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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어느 원유가 마이너스 유가 불댕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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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하루 600만배럴, 5월 700만배럴 저장 못해, 바다에서 먼 WTI 가장 빠를듯

이코노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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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석유에 대한 세계의 갈증은 이미 증발해 버렸다.

전 세계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고 비행기들은 이륙하지 못하고 땅에 묶여 있으며 공장은 불이 켜져 있지 않고 어둡다. 유례없는 석유 수요의 붕괴는 유가를 1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드렸다.

반면 감산 합의 기한이 종료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가격 전쟁을 벌이며 공급을 늘리고 있고, 미국 생산자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먼저 생산 중단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서 세계는 곧 모든 석유통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질 것이다.

자산운용사 누버거버먼(Neuberger Berman)의 에너지 분석가 제프 와일은 "시장에서 더 이상 석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 석유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골드만 삭스도 저장시설, 정유시설, 터미널, 유조선, 송유관이 결국 저장 용량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은 1998년 이후에는 일어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석유 시장에서 나타난 마이너스 가격은, 투자자들이 곧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에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CNN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와 브렌트유(Brent) 등 주요 유가는 배럴당 20달러를 겨우 넘는 선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의 중질 유가는 최근 한 자릿수로 급락하고 있다. 대개 저장 시설로의 접근이 어려운 내륙산 원유들이다.

에너지시장 연구기관 JBC에너지(JBC Energy)의 애널리스트들은 1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많은 생산업체들의 주요 이슈는 이제 그들이 영업이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원유 배출구를 찾을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가지 저장 대안은 추가로 생산하는 원유를 배에 실어두는 것이다. JBC에너지는 전세계 대형 원유 수송선(VLCC)의 약 20%가 해상 저장고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수송선들이 과잉 생산을 모두 흡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BC에너지는 4월부터 하루 600만배럴의 원유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게 될 것이며 5월에는 이 양이 하루 70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너스 유가

이러한 공급 과잉은 이미 등급이 모호한 원유 가격을 사실상 마이너스 가격으로 떨어뜨리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주 포장용 역청(Bitumen) 생산에 주로 사용되는 고밀도 석유(dense oil)인 와이오밍 아스팔트 사우어(Wyoming Asphalt Sour)가 배럴당 마이너스19센트에 낙찰되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마이너스 가격이란 석유 생산업자들이 단지 그들의 저장시설에서 석유를 빼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북해의 한 섬에 있는 저장 탱크에 보관 가격이 책정돼 있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등급의 내륙산 원유들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저장 시설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WTI는 사정이 다르다. WTI는 바다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골드만삭스의 제프 커리 원자재 담당 대표가 WTI, 특히 WTI 미들랜드(WTI Midland)와 캐나다의 서부캐나다 셀렉트(Western Canadian Select)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너스 유가는 확실히 엽기적이지만 에너지 시장에서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미국 서부 텍사스주의 천연가스 가격이 2주 이상 동안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되었는데, 이 역시 가스를 수송할 파이프라인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그 때도, 천연가스 가격 하락이 석유 생산 감소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서부 텍사스 천연가스는 대체로 퍼미안 분지(Permian Basin)에서 퍼낸 석유의 부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석유회사들은 고유가를 유지했던 석유에서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천연가스에서의 손실을 기꺼이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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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공급 과잉

그러나 현재 유가는 계속 폭락하며 1월 정점 이후 3분의 1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이제 미국 석유 회사들은 마지못해 생산을 중단하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현재 발표된 ‘폐정’을 근거로 미국의 석유 생산자들이 하루에 최소 90만 배럴의 생산을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는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으며, 그것도 "시간 단위로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 석유 생산자들이 “결국 하루 500만 배럴의 생산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너지업계 시장정보회사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공급 과잉은 4월과 5월에 미국의 대규모 석유 생산자들의 생산 중단을 강요할 것”이라며 오래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유정들부터 먼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로 셰일유전 개발업체 ‘파이팅 페트롤륨’(Whiting Petroleum)이 1일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또 다른 석유 가스 시추업체 캘런 페트롤륨(Callon Petroleum)이 30억달러(3조7200억원) 이상의 부채를 재조정하기 위해 고문들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건스탠리는 이 밖에 체사피크에너지, 안테로리소시스, 오아시스페트롤리엄, 레인지리소시스 등의 도산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옥시덴털 페트롤리움, 아파치, 콘티넨털 리소시스, 마라톤 오일 등은 신용등급 강등을 전망했다.

또 다른 석유 사태가 올 것인가?

물론, 코로나바이러스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항공사들은 다시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며 연료를 구입하기 시작할 것이고, 미국 운전자들은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더 많은 휘발유를 살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온다 하더라도 이미 많은 유정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석유산업은 예전만큼 많은 석유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 골드만의 제프리 커리는 "오늘날의 석유 과잉이 갑자기 내일의 석유 부족사태로 이어져 내년에는 가격이 55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석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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