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9 (월)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블레스 유(Bless you)"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런던 지하철서 재채기했더니 옆자리 백발 할머니 "블레스 유"

590년 교황 그레고리 1세, 전염병 희생자 위해 축복의 말 제안

코로나 지나면 새 말과 습관, 에티켓 생길 것… 어떤 감정 들까

조선일보

한은형 소설가


입술을 팔에 묻으며 재채기를 하고 얼굴을 들자 옆 사람이 뭐라고 말했다. 백발 할머니였다.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는 걸로 보아 내게 적대감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나도 웃었다. 혹시라도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눈과 입을 같이 미소 지었다. 런던의 지하철인 튜브에서였다. 나의 캐리어는 내가 히스로 공항에 내린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날 나는 런던이 처음이었다. 한참 전 일이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알고 싶었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 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적절했는지 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그런 상황에서 런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블레스 유(bless you).' 런던 사람들은 옆 사람이 재채기하면 '블레스 유'라고 말했다. 이 '블레스 유' 의식은 보통 네 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면 입을 가리고, 기침하고 나면 '익스큐즈 미'라고 말한다. 2단계, 그러고 나면 옆 사람이 '블레스 유'라고 해준다. 3단계, 그럼 기침을 한 사람은 '생큐'라고 한다. 4단계, 그러고는 둘 다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 종료. 그러니까 나는 '생큐'라고 해야 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기침을 한 사람한테 '블레스 유'라니…. 곱씹을수록 이상했다. 내가 아는 '블레스 유'란 '당신에게 축복이 가득하길'이라는 뜻을 가진 다소 '돋는' 구문이었으니까. 대체 왜 기침한 이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기침이 축복받을 만한 일인 건지도. 감기에 걸리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감기가 빨리 낫게 신의 가호가 있길 바란다는 건가? 아니면 또 어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역사가 깊었다. 서기 77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레고리 1세 때부터 구체적 기록이 있다. 590년 교황좌에 오른 그레고리 1세는 당시에 만연했던 전염병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해 3일간 참회 기도를 올린다. 또, 죽어가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다 같이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고 할 것을 명한다. 습관은 무서운 법. 전염병이 잦아든 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죽어가지 않더라도, 재채기만 해도 그렇게 말하게 된 것이다. 기침이나 재채기는 당시에 전혀 사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병에 걸릴 조짐이라고 의심받았고, 심지어 영혼이 빠져나가는 신호라는 등 말이 많았다. 그래서 다급히 신의 도움을 갈구했던 것이다. 신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시대에 이르자 '갓'이 떨어져 나가고 '블레스 유'가 남았다. 어쨌거나 이 말은 천 년 넘게 살아남은 것이다.

당시 런던에서 나는 버스보다 튜브를 타려고 했다. 미술관이나 공연장보다 펍이나 카페에 가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페와 펍과 튜브에서 나는 친구들끼리 4단계 '블레스 유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열흘쯤 관찰하면서 나는 세상 쓸데없지만 내게는 쓸데없지 않은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했다. 기침을 심하게 할 때는 '익스큐즈 미'로는 안 되었는지 '아 임 소리'라고도 한다는 것, 서로 마주 보고 웃는 4단계는 생략되기도 한다는 것, 동양인들은 '블레스 유'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기침을 한 사람에게 '블레스 유'라고 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이쪽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블레스 유' 의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내게 하는 말이 아닌데도 말이다.

런던에서 몇 년간 살았던 친구에게 '블레스 유 의식'을 볼 때의 묘한 기분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들더라고 말하자 친구는 어학원에 다닐 때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수업 시간 누군가 기침을 하자 선생님은 '블레스 유'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고.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이상한 말이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블레스 유'의 유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그 말을 기억했고, 내게 이야기해줬고, 나는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것들이 새롭게 생겨날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없던 말과 습관과 에티켓, 그로 인한 감정과 기분이 말이다.

[한은형 소설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