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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김광일의 입]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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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이 고비다. 4·15 총선은 종착역에 거의 다 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과반 얻을 승기를 잡았다"고 했다. 김종인 통합당 선대위원장은 "국민은 1류, 정부는 2류, 청와대는 3류"라고 했다. 유권자들은 지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3분의1쯤 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정치인들은 말이 앞선다. 정치란 말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을 보면 여당은 "코로나 극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야당은 "경제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난 지원금을 놓고 여야가 숫자 부풀리기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산업계는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라고 한탄하면서 "다음 국회에서 더 심해질까 우려스럽다"고 하고 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여야는 모두 울타리 위를 걷고 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울타리의 폭이 자꾸 좁아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한 발짝만 삐끗해도 아래로 떨어졌다면, 이제는 반 발짝만 헛딛어도 굴러 떨어진다.

최근 김종인 통합당 선대위원장과 그의 최측근인 최명길 전 의원을 사석에서 만났다. 김종인 위원장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여러 차례 얘기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 유권자들은 현명하다고 보면 돼. 그걸 믿으면 돼."라고 강조했다. 할아버지인 가인 김병로 선생에게서 배운 선거와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를 이만큼 키워온 주역이 바로 서울 시민이요, 서울 유권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믿고 있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 7일, 8일, 그러니까 이번 주 화요일·수요일 조사를 해서 선거법이 허용하는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를 내놓았다. 서울 종로에서 이낙연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58.4%, 황교안 통합당 후보는 30.1%로 나왔다. 격차는 28.3%P로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통합당의 여의도연구소가 최근까지 3차에 걸쳐 조사한 결과는 전혀 다르다. 최명길 전 의원은 "이낙연·황교안 두 후보의 격차가 1차에서는 12%P, 2차에서는 9%P, 3차에서는 6%P로 좁혀졌다"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황교안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론 분석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민주당 쪽 응답에는 허수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통합당 쪽 응답에는 잘 안 나타나는 숫자가 숨어 있다. 여론조사 학자들은 제대로 표심을 측정하려면 민주당 지지 응답에서는 ‘5’를 빼야 하고, 통합당 지지 응답에는 ‘5’를 보태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실제 표심에 맞게 ‘보정(補整)’하면 10%P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낙연·황교안 격차가 여의도연구소 3차 조사에서 6%P였기 때문에 이것을 보정하면 거꾸로 황교안이 4%P 격차로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황교안은 종로 선거운동에 ‘올인’하고 있는데, 이낙연이 전국 지원 유세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정치권의 한 고위 인사는 말했다. "이낙연이 거의 더블스코어로 이기고 있기 때문에 여유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낙연이 밖으로 도는 게 아주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종로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4년 전 오세훈이 그 짓 하다가 떨어졌다."

길게 보면 선거는 역시 경제 문제로 돌아온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권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 "이 상황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500조에서 1000조원을 지출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봐야 GDP의 약 5% 정도 되는 건데. 규모가 그 정도 안 되면 해결 못해." 김 위원장은 제대로 공부한 독일 경제학 박사다. 사석에서는 그를 ‘박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껏 수십조 원 규모의 추경 얘기만 듣다가 김종인 박사가 1000조 원을 말하니까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경제를 살리려면 사람에게 분무기로 살포하듯 해서는 안 되고 역시 기업을 살려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 규모로 볼 때 수십 조 원은 찔끔거리는 정도일 뿐이고 1000조는 부어야 펌프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들었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것 같지만,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를 잘못 본 것이다. 유권자들은 문재인 정권의 잘잘못을 다 기억하고 있다. 총선은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을 평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쯤 현금을 풀면 고무신 선거가 다시 통할 것 같지만,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를 잘못 본 것이다. 1962년 남자용 고무신 대(大)자가 48원이었다. 여자용은 34원이었다. 1978년 남자용 고무신은 295원, 여자용은 220원이었다. 고무신 선거는 그 시절 이야기일 뿐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귀중한 한 표로 절묘한 선택을 해왔다. 과반수 의석을 자신하면서 국민을 우습게보거나, 지금도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가 통할 것이라고 보면서 현금 몇 푼으로 사탕발림을 하거나, 그렇게 ‘오만에 빠진 정당’을 유권자들은 반드시 응징했다. 이번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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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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