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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착한 세상 가꿔..." 끝내 사과 못받은 '갑질 폭행' 사망 경비원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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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14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갑질 폭행'으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 최모씨의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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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이 꿈꾸던 착한 세상을 가꿔 가겠습니다.”

14일 오전 5시 10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차려진 분향소 앞에 주민들이 줄지어 섰다. 입주민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아파트 경비원 최모(59)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새벽 이른 시간이었지만, 30여명의 주민들은 최씨의 영정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이날 아파트에서는 최씨의 노제가 진행됐다. 유가족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1일 이중주차 문제로 언쟁을 한 아파트 주민 심모씨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했고 협박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최씨의 형 광석씨는 “폭행을 당한 직후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좌절감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씨의 발인은 당초 12일 진행될 예정이었다. 유족들이 심씨의 사과를 요구하며 미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가 숨진 지 나흘이 된 이날까지도 심씨의 사과는 없었다.

발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이날 노원구 상계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최씨의 발인식을 치른 후 해당 아파트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국화꽃과 간단한 음식, 향초가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입주민과 유족 다수는 눈물을 터뜨렸다.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한테 말을 하지 왜 바보처럼 맞고 있었냐” 등 탄식도 잇따라 나왔다.

최씨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노제 중 한 유족은 심씨가 사는 아파트를 향해 “당장 나와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일부 입주민은 최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쓴 탄원서를 가슴에 품고 있기도 했다. 입주민 정옥자(63)씨는 “이렇게 보내는 마음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이 슬픔과 온갖 서러움 훌훌 벗어버리고 다시 사는 세상에서는 부디 꽃길만 걸으소서.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이 꿈꾸던 착한 세상을 가꿔 가겠습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와 낭독했다.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14일 '갑질 폭행'으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 최모씨의 노제가 끝난 뒤 주민들이 최씨를 배웅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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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남짓 짧은 노제를 마치고 운구차는 화장터로 향했다. 최씨의 영정사진이 운구차를 향할 때 입주민들 역시 유족들의 뒤를 따라가며 최씨를 배웅했다. 입주민 A씨는 “우리는 최씨를 떠나 보냈지만 또 다른 최씨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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