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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 흔적 지우기' 나선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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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청.신산공원 전두환 표지석 잇따라 철거

제주~서귀포 횡단 516路 이름바꾸기 무산

‘올림픽동산造成記念 大統領 全斗煥, 1987.11.14.’
지난 27일 제주 시내에 위치한 신산공원에 있던 전두환 기념 표지석이 철거됐다. 설치된 지 33년만이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흔적지우기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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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신산공원에 88서울올림픽 기념으로 설치됐던 전두환 표지석./제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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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지석은 1988년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녹나무를 심으면서 남긴 것이다. 88서울올림픽 당시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태국 방콕을 경유, 1988년 8월26일 제주를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했다.
제주시는 성화 도착에 앞서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지원을 받아 신산공원에 기념조형물과 광장을 설치했다. 전두환 표지석과 기념식수도 조형물과 함께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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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신산공원에 88서울올림픽 기념으로 설치됐던 전두환 표지석./제주시 제공


제주시 관계자는 “신산공원은 체육시설과 파고라 등이 설치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최근 신산공원에 있는 전두환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다”며 “오는 6일 열리는 현충일 기념식이 신산공원에서 열리는데, 그에 앞서 철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시는 녹나무는 그대로 두고 표지판만 철거해 제주시청 기록관실에 보관했다. 이에 앞서 제주도청 공원에 설치됐던 전두환 관련 표지석도 철거됐다. 제주도는 지난 21일 제주도청 본관 옆 공원에 기념식수와 함께 있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을 40년 만에 철거했다.

이 표지석은 1980년 11월 4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지방 순회 방문 차원에서 제주도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자나무 식재와 함께 설치됐다. 표지석에는 ‘記念植樹, 大統領 全斗煥, 1980.11.4’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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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청 방문 기념으로 설치했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제주도 제공


제주도는 표지석을 제거하는 대신 기념식수인 비자나무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제주도는 철거한 전두환 표지석을 청사 창고로 옮겨 당분간 보관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에 문의해 대통령 기록물로 보관 가치가 있는지를 검토한 후 보관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폐기할 예정이다.

제주지역에서 전직 대통령 흔적지우기는 3여년 전에도 벌어졌다. 당시 논란이 됐던 것은 한라산 동쪽 일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횡단도로라 불리는 516로(路)다. 516로는 2009년 도로명주소법 개정에 따라 그해 4월 8일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 입구에서 서귀포시 토평동 비석거리까지의 구간을 지칭하는 지방도 1131호선 도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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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귀포 횡단도로인 516로./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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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로의 시초는 1932년 일제가 개설한 임도(林道)였다. 1956년 기본적인 도로정비를 거쳐 제주시 남문로터리에서 서귀포시 옛 국민은행 서귀포 지점을 잇는 40.5㎞의 왕복 2차로가 됐다.

이후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에 의해 본격적인 정비 작업이 이뤄진 뒤 1962년부터 1969년까지 공사를 거쳐 현재의 도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 도로는 지난 1967년 2m 크기의 비석 전면에 ‘五一六道路(516도로)’라고 새긴 기념비가 도로 곳곳에 세워지면서 ‘횡단도로’라 불리던 도로는 ‘516도로’로 불리기 시작했다. ‘五一六道路’라는 글씨는 당시 청와대를 찾은 제주도청 공무원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받아 제주로 온 뒤, 이 바위에 음각으로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516도로 명칭 자체가 박정희 군사 쿠데타를 미화한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여러 차례 논란이 벌어졌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2016년 12월에는 제주시 산천단 도로에 세워진 ‘五一六道路 ‘ 기념비에 누군가 붉은 페인트로 ‘독재자’라고 써 훼손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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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도로 개통 기념으로 세워진 '516도로' 기념석에 '독재자'라는 문구가 낙서돼 있다./제주의소리 제공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벌어졌던 시기에는 도로명 개정을 추진하려는 시민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시민 400여명이 참여한 ‘박정희 폐단 청산 및 제주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국민행동’은 도로명 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녹색당 고은영 후보는 516로의 명칭 변경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실제 도로이름 변경에 앞서 주민 의견을 묻는 절차도 진행됐다. 서귀포시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516로 주변 건물주와 토지주, 건축주, 세대주 등 700여 관련인에게 우편물을 보내 516로의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 700여 관련인 가운데 100여 명 정도만 의견을 낸 데 그쳤고, 그 의견 가운데 80% 가량은 현행 516로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도로명을 바꾸는 것이 불발이 됐다. 도로명주소법에 따르면 도로명 변경 의견 제출을 위해서는 해당 도로명을 사용하는 건축주나 사업주, 세대주 5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의견이 제출돼도 실제로 도로명 주소의 변경을 위해서는 또 다시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다.

[오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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