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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N번방의 시초' 손정우 사건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 손정우 법정서 울음 “국내서 죗값 달게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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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인도 불허' 결정, 손씨에 대해 면죄부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일보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씨가 6일 오후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 의왕 소재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를 운영한 손정우(24)가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따라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 20부(부장판사 강영수 정문경 이재찬)는 6일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 사건의 3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범죄인을 청구국(미국)에 인도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손씨는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 등으로 국내에서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지난 4월27일로 형기를 마쳤지만 서울고검이 인도 구속영장 집행을 완료해 다시 구속됐다.

하지만 이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손씨는 오후 12시50분쯤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인도 요청국인 미국에 최종 결정내용을 공식 통보하는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온 손씨는 결정 전 “물의를 일으켜서 다시 한 번 사죄를 드린다”며 “(국내에서) 처벌을 받을 기회가 있다면 (죗값을 달게) 받겠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죄송하다”고 다소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재판장이 결정문을 낭독하는 내내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주문 낭독이 시작되자 “흑흑”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주문 낭독을 마치자 손씨는 방청객에 앉은 아버지를 한 번 쳐다봤다. 이후 손으로 눈을 훔치고 서둘러 구치감으로 이동했다.

재판 직후 손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미국에 가지 않게 돼 심정이 어떤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판장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 너무 감사하다”고 흐느꼈다.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에는 “디지털 범죄가 이뤄진 것은 애가 컴퓨터만 가지고 자라왔던 데서 비롯됐다 보니 앞으로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피해자에게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더더욱 죄송하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아들이) 죄를 받을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빠 입장에서 두둔할 생각은 없다”며 “(아들이) 수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한편 이날 법원의 판단은 과거 이뤄졌던 범죄인 인도 청구 사건에 관한 통계 측면에서는 이례적인 결정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이 범죄인 인도 심사 사건 결정문을 전산화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0여건의 인도 심사가 있었는데 '인도 불허'는 5건에 불과하다. 그중 3건이 같은 사건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인도가 거절된 건은 3건이다.

불허 사례를 살펴보면 2006년 법원은 베트남 정부가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며 송환을 요청한 우엔후창(Nguyen Huu Chanh)씨의 인도를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은 '정치적 성격'을 이유로 들며 송환을 거부했다. 범죄인 인도법은 '인도범죄가 정치적 성격을 지닌 범죄이거나 그와 관련된 범죄인 경우에는 범죄인을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폭발물을 이용한 범죄의 예비·음모라는 일반범죄와 청구국(베트남)의 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정치범죄가 결합된 상대적 정치범죄"라고 판단했다.

2013년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고 한국으로 피신한 중국인 류창(劉强)씨에 대한 일본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불허 결정이 났다. 이 사건도 '정치적 성격의 범죄'로 규정됐다.

당시 법원은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의미·배경에다가 범행 뒤 일본을 비롯한 각 국가에서 범죄인의 주장에 관심을 두게 되고 논의가 촉발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또 "범죄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 사건 범행이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보이므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에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건은 폭행·감금 혐의를 받는 범죄인 3명과 관련한 사건으로 재판부는 '인도범죄에 관한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범죄인이 인도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등 범죄인 인도법상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를 들어 호주의 인도 청구를 거절했다.

이날 손씨 사건은 정치적 성격의 사건도,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에 해당하는 사건도 아니었다.

다만 재판부는 범죄인 인도제도의 취지, '피청구국(한국)이 범죄인 인도 여부를 결정할 재량이 있다'고 정한 한미간 범죄인 인도 조약, 범죄인 인도법상 임의적 거절 사유 중 하나인 '대한민국 국민'인 점 등을 고려해 '불허'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범죄인을 법정형이 더 높은 미국으로 보내 엄중한 형사처분을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고, 이 법원도 이러한 비판과 주장에 공감한다"고 했다.

다만 "검사도 인정했듯이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다"라며 "손씨가 국적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손씨에 대해 주도적으로 형사처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씨를 송환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경우 미국과의 국제 형사사법공조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에서 손씨에 대한 형사처분 권한을 행사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특히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이뤄질 손씨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과정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적절한 입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인도 불허' 결정이 손씨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손씨는 자신의 진술대로, 앞으로 이뤄질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손정우에 대해 법원이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리자, 해당 재판장을 비판하는 청와대 청원글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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