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과 같은 범죄인 인도 청구사건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인도심사 청구 대상국에서 우리 외교부 장관에게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면, 외교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게 인도 청구서와 관련 서류를 송부한다(범죄인 인도법 11조). 그러면 법무부에서 청구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는지, 해당 사건이 인도조약에 반하는 점이 없는지 등을 살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장관의 인도심사 청구명령에 의해 고등법원에서 심사가 진행된다(범죄인 인도법 12조, 13조). 법무부의 1차 심사를 거쳐 범죄인 인도가 청구되는 셈이다. 항고법원 성격인 고등법원이 인도심사를 진행한다. 2010~19년 서울고법이 인도심사 청구 결정을 내린 30건 중 2013년 일본 수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 방화와 관련된 중국인 류창씨 사건을 빼고 범죄인 인도청구가 인용되어 왔다.
필자는 이번 서울고법의 결정문을 최대한 꼼꼼히 뜯어 살펴봤다. 아울러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왜 이러한 결정이 나왔는지, 또 문제는 없는지 시리즈로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손정우는 특수한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에서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거래 사이트인 W2V를 운영하였다.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등을 중심으로 W2V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오던 중 비트코인 계좌를 클러스터링 방법으로 그룹화한 결과 거래소 몇몇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 2017년 9월28일쯤 대한민국에 W2V에 대한 국제사법 공조 수사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에 대한민국 수사기관은 손정우를 범인으로 특정하였다. 이후 수사·기소·재판을 통하여 손정우는 징역 1년6개월의 형이 확정되었고, 지난 4월27일로 집행을 마쳤다.
이와 별도로 미국에서는 W2V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돼 연방대배심의 판단을 거쳐 손정우는 2018년 8월9일 연방법원에 6개의 죄명과 각 죄에 해당하는 9개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미국은 1999년 12월20일 발효된 ‘대한민국 정부와 미 합중국 정부간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손정우에 대한 청구 절차를 진행하였다.
법무부는 관련 조약을 검토하고 쌍방가벌성 원칙(인도 대상 범죄: 조약 2조 1항)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서 처벌 규정이 없는 아동 음란물 광고 음모 및 광고 혐의와 대한민국에서 유·무죄판결이 난 범죄에 대해서는 인도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전의 기소: 조약 5조)에 따라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미 합중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미성년자의 노골적인 성 표현물 제작, 아동 음란물 유통 음모 및 유통 혐의는 제외하고, ‘자금세탁’만을 인도심사 대상 범죄로 특정하여 고법에 청구하였다.
범죄인 인도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양 체약 당사국의 법률에 의하여 1년 이상의 자유형 또는 그 이상의 중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조약 2조 1항)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3조는 범죄 수익 등을 은닉 및 가장한 범죄에 대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형법(18.U.S.C) 1956조에서는 자금세탁 범죄에 대해 최고 20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자금세탁은 인도 대상 범죄가 맞다.
손정우의 변호인 측은 범죄인 인도법 10조에 근거해 ‘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의 범죄로 처벌받지 아니하고 제3국에 인도되지 아니한다는 청구국의 보증’이 없어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앞서 설명한 범죄인 인도조약 15조에서는 ‘특정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의 범죄로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범죄인 인도법 3조의2에 의하면 범죄인 인도에 관하여 조약에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종합해 보면 범죄인 인도조약이 범죄인 인도법의 특별 규정이다. 그러므로 별도의 보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난 5월27일(현지시간) 미 연방 법무부에서 자금세탁 이외의 기소 범죄는 기각한다는 취지의 답변까지 보냈다.
여기에 더해 손정우의 변호인 측은 범죄인 인도법 7조 3호에 따라 손정우가 인도범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 절대적 인도거절 사유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없는 게 아니라 해당 범죄를 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손정우는 W2V에서 자동 생성된 1회성 비트코인 계상 계좌만 이용, 국내외 8개의 거래소 계좌로 송금했고, 장외거래나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송금 후 재인출하는 등의 행위를 보였다. 이를 고려하면 범죄수익을 은닉하거나 가장한 범죄를 범했다고 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셈이다.
서울고법 형사20부의 판단도 이와 같다. 이 부분까지는 형사20부의 판단이 전적으로 지당하고 매우 합리적이라고 평가된다. 필자 또한 대찬성이다.
이제 손정우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 인도 범죄의 범죄지 관할 문제 및 비인도적 성격 여부 등이 손정우를 미국에 송환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사정인지 다음 기고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