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박원순 시장 5일장 반대' 국민청원 50만명은 무엇을 의미하나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시장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5일장’으로 치르지 말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이틀 만에 5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짧은 시간 수십만명이 청원에 동참한 배경에는, 박 시장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권력형 성폭력 의혹에 안일하게 대응해 온 집권여당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깔려있다.

박 시장 사망 당일인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언론에서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 대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건가”라고 썼다. 청원 이틀 만인 12일 5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박 시장의 장례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청원인의 요구사항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 청원에도 예정대로 5일장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해외 체류 중인 친가족(아들) 귀국에 시일이 소요돼 입관시기를 감안해 장례시기를 늘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13일로 예정됐던 영결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들은 박 시장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장례 절차가 ‘고인에 대한 예의’라는 이름하에 성폭력 피해호소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청원에 서명했다는 취업준비생 김동이씨(28)는 “박 시장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다 죽은 게 아니라, 위계에 의한 성폭력 의혹으로 고소장이 접수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굳이 5일장으로 치르려는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이유미씨(41)도 “박 시장 지지자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성폭력 혐의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확정되기도 전에 피해자를 배제하는 순서로 가고 있다”고 했다.

고인에 대한 비통함을 앞세워 성추행 의혹에 반응하지 않는 민주당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에게 ‘고인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욕설을 했다. 허윤정 민주당 대변인은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호소인 주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도 듣고 있다’며 2차 가해성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박 시장 사망 전까지 그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김희연씨(33·가명)는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상 장례식에 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간 것을 보고, 여권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의혹을 ‘개인의 성추문’ 정도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같다고 느꼈다”며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만큼 당 차원에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평소 성폭력 사건에서의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해온 박 시장과 집권여당에 ‘배신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컸다. 직장인 김승현씨(28)는 “선거때는 페미니즘을 언급하며 지지를 호소하던 민주당이 지금은 성폭력 의혹에 분노하는 목소리를 모른척 하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화가 나 청원에 참여했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박 시장을 고발한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 중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안 전 지사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책 <김지은입니다> 등을 나눠주며 해시태그 릴레이 동참을 독려하기도 했다.

서울시 차원의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민원 인증’도 이어졌다. 박 시장 사망 이후 경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서울시는 진상을 밝혀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한 누리꾼은 앞서 서울시가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비서실 직원을 대기발령(직위해제)하며 성 관련 비위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점을 언급했다.

서울시 인권보호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서울시 인권기본조례에는 경찰이나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수사가 종결된 사안에 대해 구제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을 각하한다고 규정이 있다. 자체조사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면서도 “최대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경향신문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잔디 광장을 한바퀴 도는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며 조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윤지·이창윤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