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터키에서 처음 제작한 드라마 `더 프로텍터`는 전 세계 1000만명의 넷플릭스 구독자가 즐긴 작품이다. /사진 제공=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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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310] 황금알을 낳는 터키 시장이지만 터키 정부가 검열의 칼날을 들이대자 넷플릭스는 터키 시장에서 제작 중인 작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느니 아예 제작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의 마히르 우날 대변인은 "아니, 우리가 넷플릭스에 단체로 사과라도 해야 합니까? 넷플릭스가 만드는 모든 작품을 축복하고 정당화해줘야 돼요?"라고 쏘아붙였다.
터키 정부와 넷플릭스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넷플릭스는 터키에서 제작 중인 '이프 온리(If Only)'라는 작품을 정부 입맛에 맞게 고치느니 제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작품의 작가인 에세 요렌스는 지난주 드라마 제작이 무산됐다고 직접 공개했다. 요렌스는 터키의 영화 뉴스를 다루는 웹사이트 알티아지 파시컬에 "게이 캐릭터 때문에 시리즈 제작 허가가 승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미래 전망에 있어서도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같은 이름의 유명 영화 내용과 달리 터키에서 제작 중인 '이프 온리'는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30년 전 그녀의 남편이 프러포즈를 하던 때로 거슬로 올라가며 생기는 충돌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작품에 게이 캐릭터가 나온 게 넷플릭스와 터키 정부 간 다툼의 원인이 됐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정부는 게이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의 수정을 넷플릭스에 요청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작품상 게이 캐릭터 간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물론 게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과 신체 접촉을 하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았는데도 수정을 할 수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더 나아가 정부가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부분을 간섭하게 두느니 아예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한때 터키는 중동 LGBT에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였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이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터키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며 인기를 끌었던 LGBT 퍼레이드도 터키 정부의 명령으로 최근 몇 년간 취소됐다. 터키 정치인들은 LGBT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넷플릭스의 결정에 정의개발당의 우날 대변인은 "넷플릭스는 우리한테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한테 반대할 권리도 없나?"라고 반박했다. 반면 야당 소속 정부 방송심의기관 멤버인 일한 타시는 정부가 개별 작품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에르도안 정부는) 모든 사회에 그들의 세계관을 심으려고 하고 있다. 830만 터키인이 모두 그들과 같이 생각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터키에서 작품 제작 중단을 선택한 건 넷플릭스한테도 뼈아픈 선택이었지만 넷플릭스는 자사 콘텐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두 개의 터키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첫 작품인 '더 프로텍터(The Protector)'의 경우 한 상인이 도시를 지키는 사명을 지닌 선조들의 뜻을 이어받아 활약하는 영웅담을 앞세워 전 세계 1000만명의 구독자들이 작품에 매료되도록 만들었다. 2019년 말 기준 터키의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150만명에 달했다. 이 같은 기세를 등에 업고 넷플릭스는 세 번째 터키 자체 제작 드라마로 '이프 온리'를 선택했지만 이 작품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사장될 운명에 처했다.
넷플릭스가 작품 제작 중단을 선언한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FT는 전했다. 넷플릭스는 2015년 이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뉴질랜드 정부 요청으로 일부 작품들의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 적은 있다. 넷플릭스가 최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곳곳에서 자체 제작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작품 제작이 엎어지는 건 더 흔한 일이 될 거라고 FT는 전망했다. 넷플릭스는 최근 디즈니+, 애플TV+ 등 경쟁사들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 시장에서 거세게 도전함에 따라 콘텐츠 확장을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체 제작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킹덤 등 넷플릭스가 만든 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다만 넷플릭스는 '이프 온리'의 제작만 취소됐을 뿐 터키에서의 자체 제작을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중요한 시장이자 창작 허브인 터키에서의 작품 제작 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여러 개 작품을 개발 중이고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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