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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기고] 제2 이건희 컬렉션 못만드는 '미술품 물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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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총 72만명을 동원하며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운 전시는? 바로 이건희 컬렉션 기증 전시다. 2021년 4월부터 약 2년간 전국 주요 미술관 10여 곳을 순회하며 진행됐고,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을 서거나 다른 도시로 원정을 가는 문화 현상까지 발생했다. 한국 미술사상 보기 드문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는 이건희 컬렉션의 수준 높은 예술성과 방대한 규모가 큰 몫을 했다. 모네, 르누아르 등 서양 근대 거장부터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 한국 대표 작가들 작품에 이르기까지 2만3000여 점, 3조원 이상의 가치다. 한 컬렉터의 혜안 덕분에 외국에 반출되거나 유실되었을지도 모를 국보급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지킬 수 있었고, 국민 모두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공의 유산이 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적 효과를 체감한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미술품 물납제'다. 202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국가가 소장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미술품'에 한해 '보존 상태, 활용 가치, 역사·학술·예술적 가치, 감정가액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여 물납제를 허용한 것이다. 2024년 첫 사례가 나왔다. 한 상속인이 신청한 10점 중 4건으로, 한국 근대화가 이만익의 1991년 작품 '일출도', 현대미술 작가 전광영의 2008년 '집합' 시리즈 중 한 점, 그리고 중국 현대미술 작가 쩡판즈의 2007년 초상화 2점이다.

    그러나 이후 추가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24년 초 도입 당시의 관심에 비해 신청 사례나 심사 결과에 대한 공론화는 눈에 띄게 조용한 편이다. 또한 첫 사례로 국보급 작품들이 수집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대미술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점도 의외였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에 부과된 상속세에 한해 물납이 가능하고,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해야 하며,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 중 금융재산 가액을 초과해야 한다'는 요건을 보자. 상속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려면 작품 시가가 최소 1억50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고미술이나 드로잉 등의 소품은 문화적 가치가 있어도 시장가치가 낮아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행 물납제는 고가 미술품을 중심으로 적용되는 구조인 셈이다. 또한 컬렉터가 납부세액 이상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을 경우도 열외다. 작품의 시장가치가 과세 세액보다 높을 경우 물납하더라도 초과분에 대한 보상 방법이 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작품들은 시장에 유출될 수밖에 없어, 문화재급 작품을 국가의 문화 자산으로 확보할 길이 소원하다. 또한 미술시장의 유통 속도와 세금 납부 기간 사이의 간극 조율도 쉽지 않다.

    물납제 도입 초기에 제시되었던 영국이나 프랑스의 모델은 상속 미술품에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초과 납부액은 기부금 공제로 허용한다. 물납제를 국가가 우선적으로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는 통로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오랜 논의 끝에 도입된 제도인 만큼 물납제가 단순히 세금의 대체 수단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유산을 확보하는 실효적 장치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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