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가 지난 7월 29일부터 민간택지에도 적용됐다. 서울 강남과 서초·송파·강동·마포·용산·성동·동대문·노원 등 18개구 309개동과 경기 과천·광명·하남 등 3개시 13개동이 적용 대상이다. 원래 지난 4월 말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부 조합이 분상제를 피하려고 시행 이전에 입주자 모집 공고를 신청하기 위한 총회를 개최할 경우 코로나19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석 달가량 적용이 늦춰졌다.
분양가를 규제하는 제도는 1977년 ‘분양상한가’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 중동붐으로 유입된 자본이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면서 아파트가격 급등이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분양가 규제는 주택시장의 침체·활황에 대응해 확대·축소를 반복했다. 최근 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에도 적용된 것은 2015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공공택지를 제외한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했다.
분양가상한제는 주택 분양가격을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택지비는 토지 감정평가액과 택지가산비, 건축비는 기본형건축비와 건축가산비다. 가산비용은 택지 개발을 할 때의 암반공사나 지능형 설비, 친환경 설비 등의 비용을 반영한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사위원회로부터 분양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분양가 중 택지비와 직·간접공사비, 설계비, 감리비, 부대비, 가산비 등 7개 항목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사가 폭리를 취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시작된 7월 29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근혜 정부의 무력화 후 집값 상승
분양가 상승은 주변 기존 주택의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기존 주택가격이 오르면 분양가가 오르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이 때문에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를 누르면 ‘집값 상승’이라는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실제 정부는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서 발급 과정에서 고분양가 심사를 통해 정하는 가격보다 일반분양가가 5∼10% 정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발표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분양가를 계산하면 강남은 3.3㎡당 4700만원에서 2160만원으로, 비강남권은 2250만원에서 1139만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분양가상한제의 가격 안정화 효과를 보려면 과거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던 시기인 2007~2014년 서울의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0.37%였던 반면 민간주택의 분양가 규제가 폐지된 2015~2018년 서울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5.67%에 달했다. 국토연구원도 지난해 7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서울 아파트가격이 연간 1.1%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분양가 규제로 건설사의 채산성이 악화되면 신규주택 공급을 위축시키고,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반대 내지 신중론의 주요 논지다. 분양가상한제로 주택 공급이 줄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집값이 더 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조합과 건설사의 이익이 줄면 정비 사업을 주저하거나 기약 없이 연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를 낮추면 결국 ‘로또 분양’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역사적 경험을 보면 분양가상한제가 없을 때 항상 주택가격이 폭등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무력화가 2015년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조합의 이윤이 낮아질 뿐 적정한 이윤은 여전히 보장된다는 점에서 공급이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분양가 올리기 어려워
민간주택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과거와 달리 주택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선별해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는 점에서 공급 위축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예전에는 전국적으로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전의 밀어내기 공급에 따른 과잉공급이 있고, 그 이후 공급이 감소하면서 시장의 균형이 깨지는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투기과열지구 일부에서만 시행하고 고분양가 폭주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분양가상한제 도입으로 집값이 갑자기 잡히거나 안정화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분양가상한제가 집중 실시되는 서울의 경우 일부 정비 사업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를 우려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는 다주택자의 주택 매입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 제도를 적용받을 경우 5~10년의 실거주 의무가 생기고, 전매제한 기간 내 매각할 경우 토지주택공사에 팔아야 하는 제한을 받는다. 불법 전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이익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주택 실수요자들의 분양시장 접근성을 높였다”면서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을 억제하고 취득할 경우의 부담도 상당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실수요자들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청약을 기다리는 이들은 분양가상한제로 나올 분양 물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기대를 받는 사업은 둔촌주공 재건축이다. HUG의 분양가가 2978만원으로 3500만원대를 요구한 조합의 기대치보다 크게 낮자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조합원 일부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추세에 따라 HUG 분양가보다 오히려 높게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에 회의적이다. 분양가심사위원회가 예전처럼 ‘깜깜이’로 운영되지 않고, 위원회에 누가 들어가는지, 회의 내용은 어땠는지 공개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서 심사위원 일부를 파견하기 때문에 투명성도 높아졌다. 함영진 랩장은 “기본적으로 분양가심사위원회가 굉장히 까다롭게 움직인다”면서 “가산비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HUG가 제시한 것보다 비싸지면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분양가상한제 분양가가 HUG 분양가보다 높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