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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시장(장마당)을 키워드로 본 함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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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2] 함흥을 상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함흥냉면과 흥남항, 흥남비료공장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함흥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추억이 담겨 있는 공간이자 가족들과 친구들, 좋아하는 장소들을 품고 있는 가깝고도 가장 먼 그런 곳이다. 가끔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구글어스를 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곤 한다. 그때마다 그곳은 익숙하지만 기억 저편에 차곡차곡 숨겨둔 빛바랜 모습으로 다가왔다. 신흥관(함흥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과 함흥대극장을 비롯해 함흥을 대표하는 여러 곳이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바로 '시장(장마당)'이다. 오늘은 시장을 키워드로 북한의 도시, 함흥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 대중에게 북한 시장이 알려진 계기는 아마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개성 시장과 평양 백화점 등을 통해 북한에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경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공원화된 공장구내에서 휴식의 한 때를 보내고 있다"면서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외부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노동자들은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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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02년 7월 1일, 7·1조치를 계기로 '종합시장'을 공식적으로 허가했다. 이로 인해 함흥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나타났던 비공식 시장이 공식화됐고, 시장이 활성화된 대표적인 도시로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해 함흥은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과 유통, 소비가 활성화돼 북한 도시 시장 유통망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함흥시에 있는 공식 시장의 수는 11개로 대표적인 시장은 삼일시장과 금사시장, 평수시장, 사포시장, 류정시장, 서호시장이다.

삼일시장은 함흥시 삼일동에 위치해 있으며 2004년에 개설됐다. 규모는 최대 길이 184m, 최대 너비 80m다. 고난의 행군 이전부터 함경남도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재일동포와 같이 함흥역 앞에 있는 외화상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외화상점의 상품이 삼일시장으로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돈주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삼일시장의 상품은 일반 시장에 비해 조금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일시장은 규모가 크지만 골목에 위치해 한번 들어가면 미로처럼 길을 찾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사포시장은 면적이 1만2995㎡며 9282개의 매대를 가지고 있다. 사포시장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도매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나진이나 무산을 통해 중국의 천을 대량으로 들여와 함흥에서 옷을 가공한다. 사포시장 주변 집들에서 '써래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공 옷을 만들어 사포시장에서 도매가격으로 거래한다. 사포시장은 도매시장으로서의 면모에 맞게 전국의 달리기(장거리 장사꾼을 이르는 북한말)들이 몰려들어 매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평수시장은 1만6721㎡의 크기와 1만1944개의 매대를 가지고 있어 규모로 보아 함흥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전국 도시 시장 중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북한에서 시장이 공식화되기 이전부터 평수시장은 농민 시장으로 운영돼 왔고, 지금도 농수산물 위주로 거래되고 있다. 함흥 사람들은 흔히 '평수시장에는 고양이 뿔 빼고 다 있다'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금사시장은 2000년대 후반에 세워진 시장으로 함흥시장 최초의 2층 건물로 실내공간에 지워진 시장이다. 삼일시장과 거리상으로도 가까이에 있는 금사시장은 새로운 건물과 현대적 건물이라는 이유로 자릿세도 비싸다. 심지어 상품은 중국이나 한국의 고가만 취급한다. 필자도 한국 오기 전에 한 번 정도 금사시장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실내 건물을 보며 놀란 토끼 눈으로 어른들 뒤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시장은 함흥시에 거주하는 주민과 함흥을 둘러싸고 있는 농촌 사람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도매를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는 곳이 아니라 페르낭 브로델이 이야기한 것처럼 "시장은 해방이며, 개방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시장 안에서 상인들이 취급하는 물건에 따라 어떻게 계층화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면의 한계상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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