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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초능력 아이들 수용한 ‘시설’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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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튜트 1·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각 권 1만5000원

스티븐 킹 신작소설 ‘인스티튜트’ 번역출간


한겨레

신작 소설 <인스티튜트>의 작가 스티븐 킹. 텔레파시와 염력을 지닌 아이들을 납치해 테러에 활용하는 비밀 시설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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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신작 장편 <인스티튜트>는 ‘시설’(인스티튜트)로 불리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주인공인 열두 살 소년 루크 엘리스는 어느 날 밤 집에서 잠을 자다가 납치되어 이곳으로 끌려왔다. 부모는 납치범들에게 살해되었고, 소년은 그 범행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외딴 숲속에 비밀스럽게 자리잡은 시설은 철책으로 둘러싸였고, 이곳에 수용된 아이들의 귀에는 지피에스(GPS) 칩이 삽입된다.

루크는 영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지능이 뛰어난 소년. 열두 살 나이에 이미 MIT와 에머슨대에 입학 허가를 받고 그 두 대학에서 동시에 공학과 영문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그를 데려온 것은 루크의 그런 빼어난 지능을 탐내서가 아니었다. 이곳은 텔레파시와 염력을 지닌 아이들을 훈련시켜 모종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시설. 책임자인 식스비 부인은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이고 너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어”라고 루크에게 말한다.

식스비 부인은 자신이 말하는 전쟁이 군비 경쟁이 아니라 ‘정신적인 경쟁’이라고 부연설명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차츰 드러나거니와, 이곳은 아이들이 지닌 텔레파시와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한껏 확장시켜 비밀 임무에 써먹기 위한 시설이다. 지구 평화를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것이 그 임무인데, 식스비 부인과 그 일당은 자신들이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수백 차례나 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시설 같은 것도 특히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너도 나도 떠들어대 비밀이라고는 지켜지지 않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면 말이 새어나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 이렇게 있었다. 그들은 여기 이렇게 있었다.”

이런 시설이 1950년대부터 70년 넘게 비밀리에 유지되었으며 그것도 소설 무대인 미국 북동쪽 끄트머리 메인주만이 아니라 한국의 남원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스무 곳이나 더 있다는 설정이 소설을 끌어 가는데, 음모론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설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대목은 루크와 동료들의 ‘존재’ 자체가 시설에 대한 무엇보다 강력한 증거라고 거듭 강조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 어쨌든, 일단은 킹의 이야기를 좇아 가 보자.
한겨레

소설의 주요 무대가 시설이고 주인공이 루크이긴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다른 공간의 전혀 다른 인물 이야기로 문을 연다. 플로리다에서 경찰로 근무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옷을 벗고 이혼까지 하게 된 팀 제이미슨이 그 인물로, 사설 경비 업체에라도 취직할까 싶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소도시 듀프레이에 ‘불시착’한다. “듀프레이는 모든 것과 거리가 먼 곳처럼 느껴졌다. 그냥 곁길이 아니라 아예 오지에 가까웠다.” 이 한적한 동네에서 그는 경찰 경력을 인정받아 야경꾼으로 취직하고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꾸려 간다. 이런 팀과 루크가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시설에서 도망친 루크가 화물차를 이용해 이 소도시에 들어오는 2권 전반부에서다.

시설에서 아이들은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폭력과 고문에 시달리며 ‘무기’로 개조된다. 그 과정에서 한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루크는 탈출과 복수의 결심을 굳힌다. 책 머리에는 구약 사사기 중 삼손의 복수를 그린 부분이 인용되어 있는데, 루크는 바로 그 삼손처럼 무자비한 복수를 꿈꾼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 위로 다곤 성을 무너뜨렸듯 이 시설을 그들 머리 위로 무너뜨리고 싶어 했다. 악에 받친 열두 살짜리의 무능력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어 했고, 그럴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삼손이 육체적 초능력으로 복수에 성공했다면, 루크와 그의 친구들은 정신적 초능력으로 같은 일을 한다. 사악한 어른들에게 붙잡혀 초능력 공격대로 쓰였던 아이들이 바로 그 능력을 이용해 어른들에 대한 복수에 성공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설에 처음 들어온 루크에게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소녀 칼리샤, 힘 없이 당하는 대신 끊임없이 저항하고 행동하는 소년 니키, 누구보다 염력이 뛰어난 열 살 소년 에이버리 그리고 루크에게 진 신세를 갚으려는 청소부 모린 등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루크의 탈출과 복수에 힘을 보탠다. 이들과는 반대로, 시설에 들어오기 전 끔찍하기만 했던 삶에 대한 증오 때문에, 시설에 남아 그곳 관리인이 되고 싶어 하는 소녀 프리다 브라운 같은 인물은 이야기를 한결 두껍고 복잡하게 만든다.

루크가 꿈꾸던 복수는 두 갈래로 실현된다. 시설에 남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이용해 시설의 어른들을 제압하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의 방향이라면, 다른 하나의 복수는 그를 다시 붙잡으러 온 식스비 부인 일당을 물리치는 듀프레이의 액션 활극으로 처리된다. 그 활극의 중심에는 물론 팀 제이미슨이 있고, 노숙인 애니 르두와 ‘삐딱선’ 코벳 덴턴 같은 루저들이 힘을 보탠다. 경찰에서 잘린 팀 역시 승리자라 하기는 어려운 만큼, 듀프레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루저 연합 세력이 번듯하고 힘 있는 자들을 상대로 펼치는 유쾌한 복수전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루크의 탈출에 결정적 기여를 한 모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군인 출신이며 그 자신 ‘선진 신문’이라 표현하는 불법 고문에 가담한 이력도 있다. 그는 여전히 시설이 핵전쟁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믿으면서도 루크의 탈출을 돕는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우리는 그를 대신해 던져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답이 부정일 것임은 물론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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