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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2020 미국 대선

‘노마스크 1500명’ 앉혀놓고… 트럼프, 70분간 바이든만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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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수락연설 중 41번 비난

미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7일(현지 시각) 밤 10시 21분, 커다란 스포트라이트가 백악관 남쪽 현관을 비췄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 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둣빛 롱드레스를 입은 부인 멜라니아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빽빽하게 채운 1500명 청중 대부분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트럼프 부부가 레드카펫을 밟고 연단으로 이동하는 동안, 컨트리뮤직'갓 블레스 더 유에스에이(God Bless the USA)'가 흥겹게 울려 퍼졌다.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대유행에 대한 경계감은 없었다.

조선일보

백악관에서 대선후보 수락 연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 손을 잡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11월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41차례 거명하며 “조 바이든은 미국 영혼의 구원자가 아니라 미국 일자리의 파괴자”라고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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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백악관을 정치에 끌어들이지 않는 관례를 무시하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장소로 선택했다. 그리고 연설 초반부터 그 이점을 100% 활용했다. 트럼프는 "피비린내 나는 남북전쟁 와중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바로 이 창문에서 반쯤 완성된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그분의 섭리 안에서 미국을 구원해 달라고 빌었다"고 말하며, 슬쩍 백악관 2층의 유서 깊은 트루먼 발코니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과 온 지구는 강력하고 보이지 않는 적의 습격을 받았다"며 "우리는 연말 이전, 어쩌면 더 빨리 백신을 생산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은연중에 자신을 링컨 대통령에 빗댄 것이다.

이날 트럼프 수락 연설은 70분 동안 이어졌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016년 자신이 세운 '가장 긴 수락 연설' 기록을 깼다"고 했다. 2016년 수락 연설에서는 5092단어를 말했는데, 이날은 5650단어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은 상대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미국은 어둠 속에 갇힌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밝히는 횃불"이라며 "조 바이든은 미국 영혼의 구원자가 아니라 미국 일자리의 파괴자"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일주일 전 민주당 전당대회 수락 연설에서 "현 대통령은 미국을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가둬 놓았다"며 "나는 빛의 동맹이 되겠다"고 했었다. 이를 공격 빌미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던 일을 거론하며 "그의 정당이 불을 계속 켜놓지조차 못하는데 어떻게 조 바이든이 '빛의 동맹'이 되겠다고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트럼프는 중국과 바이든을 싸잡아 공격했다. 그는 "지난 47년 동안 조 바이든은 미국의 일자리를 중국과 많은 다른 나라로 보내는 데 찬성했다"며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 중국이 이 나라를 소유할 것"이라고 했다. 또 "조 바이든의 의제는 '메이드 인 차이나'지만, 내 의제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대응에 관해서도 "과학을 따르는 대신, 조 바이든은 고통스러운 '셧다운'을 전국에 내리고 싶어 한다"며 "'바이든 셧다운'의 대가는 약물남용,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자살, 심장마비, 경제적 충격, 실업 등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지난주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이날 바이든을 41번 거명했다.

트럼프는 '백악관'이란 장소를 부각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는 백악관을 가리키며 "내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자, 집(home)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모두 여러분 덕분에 가능했다. 함께 우리는 위대한 미국 역사의 다음 장을 써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백악관 앞 워싱턴 기념탑 주변에서 성대한 불꽃놀이가 5분여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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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앞에선 “트럼프·펜스 아웃” - 27일(현지 시각) 백악관 인근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펜스 나가라”는 현수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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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백악관 주변에는 기존의 낮은 울타리 외에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3m 높이의 육중한 금속펜스가 추가로 설치됐다. 세 겹의 장벽에 에워싸인 요새가 된 백악관을 트럼프가 “내 집”으로 표현하는 동안, 백악관 밖에서는 수백 명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트럼프·펜스 아웃”을 외치며 행진했다. 이들과 트럼프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개입하면서, 트럼프의 연설 내내 워싱턴DC 중심가엔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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