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포스트 아베’ 총리 D-2, 日스가 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오는 14일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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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다. 스가 장관은 일본에서도 가문, 파벌, 학력이 없는 3무(無) 정치인으로 불린다. 이로인해 '서민의 총리', '자수성가 총리'라는 말이 나온다다. 하지만 그가 진짜 흙수저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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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이야기...스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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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재임 시절의 스가 관방장관. /사진=로이터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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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장관은 1948년 아키타현의 가난한 딸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해 골판지 공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다 2년 늦게 호세이대에 진학했다. 이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학비가 제일 쌌기 때문. 그는 입학 후에도 생계를 위해 경비원, 카레 가게 아르바이트 등을 했고, 이로인해 대학 야간부를 다녔다고 한다.
졸업 후 회사원을 택했던 스가는 정치의 뜻을 품고 가나가와현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의 비서로 취직한다.
11년간 비서생활을 하다가 1987년 요코하마 시의원으로 출마해 처음으로 당선됐다. 그는 요코하마에서 2선을 했을 뿐이지만 요코하마 시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별명은 '요코하마의 그림자 시장'.
1996년에는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48세에 나이로 가나가와현 중의원에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했다. 이후 그는 이 지역구에서만 8선을 했다.
오키나와 전통 의상을 몸에 대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장관(오른쪽 끝).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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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와의 인연은 2002년 부터다. 당시 일본은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면서 반북 정서가 강했다.
당시 자민당 총무였던 스가 장관은 이 문제를 두고 북한의 화물여객선 입항 금지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총리의 눈에 띄었다. 아베 총리는 스가 장관에게 연락해 협력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두사람이 가까워졌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3차 개각에서 총무부대신에 임명됐던 스가 장관은 이듬해 자민당 총재선거에 재도전지원의원연맹에 참가, 아베 총리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같은해 아베 총리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스가는 총무대신으로 입각한다.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퇴하자, 스가 장관은 아베에게 재기를 하면 된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아베 총리가 2차 집권을 하게 되면서 스가 장관은 동시에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됐다. 같은해 말부터는 관방장관을 맡으며 줄곧 정권 2인자로 활약해왔다.
하지만 스가 장관이 늘 아베의 '그림자'였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땐 "경제가 우선"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지난해말부터는 아베 총리가 사학스캔들, 벚꽃스캔들 등을 두고 자주 스가 장관 탓을 하면서 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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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흙수저? 스가는 부유한 집안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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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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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장관이 대세로 떠오르자 그의 과거가 부풀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슈칸분슌은 스가 총리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스가의 아버지는 딸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문화평론가 후루야 츠네히라는 "스가의 아버지 스가 카즈사부로는 아키타현 오가가쓰정 마을 의회 의원을 4연임했으며, 딸기 농사로 성공해 1959년 지역 조합장이 된 인물"이라면서 "2010년 별세 후 욱일장(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성공적인 지역 명사였다"고 지적했다.
슈칸분슌은 1980년대 딸기농가는 판매액이 3억7000만엔(약 41억원)에 달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스가 장관이 골판지 공장에서 막노동을 한 것을 두고 일본에서는 농촌의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도시 공장에 취업하는 '집단취업'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
슈칸분슌은 스가 장관이 골판지 공장 취업 후 2개월만에 퇴직했다고 했다. 또 대학 야간부를 다닌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스가 장관은 호세이대 정치학과 주간부를 정식으로 졸업했다.
후루야 평론가도 스가 장관이 도쿄로 상경한 것은 딸기 농장을 물려받길 원하는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이며,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부자지간의 갈등 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었다고 했다. 슈칸분슌은 스가 장관이 대학 재학 시절 누나들로부터 용돈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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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변함없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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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왼쪽)과 스가 장관이 얘기하는 모습. 두사람은 오는 14일 자민당 총재에서 후보로 경쟁하게 됐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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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야 평론가는 스가 장관이 고생을 한 사람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럼에도 변함 없는 건 스가 장관의 정치 인생이다. 일본은 세습정치로 유명하다. 보통 아버지나 할아버지때부터 출마해온 지역구에 자식이 출마에 손쉽게 정계에 입문한다.
아베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는 10선 의원이자 전 자민당 간사장과 외무상을 역임했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를 비롯해 'A급 전범'이자 전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를 외할아버지로 둔 엘리트 정치집안의 후광을 입었다. 그는 가문이 득세하던 지역구에서 정계에 무혈입성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도 전 총리인 아버지(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지역구에 나가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스가 장관은 첫 정계 입성부터 경쟁자들의 공격을 뚫어내고 혼자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2009년 이후부턴 당내 어느 파벌에도 속해있지 않다. 그만큼 정치적 수완만큼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가 장관은 현 상태라면 아베 총리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1년짜리 임시직'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중의원 해산, 총선거에 돌입해 권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림자'였던 스가 장관이 양지로 나와 얼마나 두각을 나타낼지는 지켜볼 일이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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