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포스트 아베’ 총리 D-2, 日스가 ⑤ 자민당 5개 파벌이 스가 지지 선언…'당 속의 당' 파벌 세력 확대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 나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사진=AFP |
지난 2일 스가 요시히데(71) 일본 관방장관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중계하던 TV아사히 해설위원은 "뽑기도 전에 끝났다"고 논평했다.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임 발표 이후 시작된 차기 총리 선출이 실제 투표도 하기 전 '스가 당선'으로 사실상 결론이 난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일본의 총리를 선출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오는 14일 열리지만, 이변이 없는 한 스가 장관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스가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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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국회의원 78% 스가 지지"…지방당원 표 제로여도 이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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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국회의원 중에서 스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308명으로 78%에 달했다. 지방 당원에게서 0표를 받는다고 해도 58%를 차지, 1차 투표에서 당선이 가능하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가운데 호소다(98명), 아소(54명), 다케시타(54명), 니카이(47명), 이시하라(11명) 등 5개 파벌이 스가 후보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무파벌 의원 64명 중 70%가 넘는 46명도 스가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다른 후보인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자신이 이끄는 파벌 47명과 무파벌 의원 5명을 더한 52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지지하는 의원은 24명에 그친다. 2명 모두 패배가 예상되는 선거에 나가게 되는 셈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의 총리는 하원 격인 중의원과 상원 격인 참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선출되기 때문에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1억2000만 국민의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아무리 의원내각제를 택한 국가라 해도 394명(중의원 283명, 참의원 111명)에 불과한 자민당 국회의원, 그중에서도 몇몇 파벌을 이끄는 극소수 정치인이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가능케 한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와 밀실정치에 대한 비판도 크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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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일당 독주체제…'당 속의 당' 파벌 힘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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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사에서는 매주 목요일 낮 12시 의원들의 점심 모임이 이뤄진다. 목요일 점심은 자민당 내 각 파벌이 함께 점심을 먹으며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이다. 모든 파벌이 같은 시간에 모임을 여는 건 여러 파벌을 기웃대는 '박쥐'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다.
자민당 내 파벌은 명목상 공부 모임 등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하나의 정당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체계적인 조직을 갖췄다. 각 파벌의 수장은 인사권과 돈을 독점하고, 각 사안에 대한 파벌의 입장을 결정한다. 소속 의원들은 보통 매달 5만엔(약 50만원)의 회비를 내며, 정치자금 모금 할당액을 채워야 하는 의무도 진다.
일본 정당정치에서 파벌의 힘이 이토록 강력해진 건 자민당의 일당 독주 체제와 관련이 깊다.
자민당은 1955년 출범한 후 딱 두 번 정권을 내줬다. 반자민당 연립정권으로 집권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1993년 8월~1996년 11월)과 민주당 정권(2009년 9월~2012년 12월)이다. 65년에 이르는 역사 가운데 6년 6개월만 야당 역할을 했다.
정권 교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일본 정치 내에서 파벌은 '당 속의 당' 역할을 해왔다. 특히 일본 국회가 복수 교섭단체(한 정당 안에서 둘 이상의 교섭단체 형성이 가능)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파벌의 힘을 키웠다.
지난 8일 일본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자민당 총재 후보들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려 3명의 후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스가 관방장관은 "아베 정권을 계승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을 만들겠다"라고 강조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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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파벌정치, 밀실·담합 정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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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은 일본 정치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정치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파벌들의 담합과 이합집산으로 중요 정책들이 결정되며 부정부패도 잇따랐다. 민간항공기 수입 과정에서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정치인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록히드마틴 사건(1976년)'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소선거구제 도입과 당 중앙집권화 등으로 파벌의 영향력은 약화했고, 이를 타파하려는 움직임도 생겼다. 특히 고이즈미 전 총리는 초선 의원들의 파벌 가입을 막고 당 차원에서 의원 교육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이어온 파벌 정치의 산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파벌은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파벌 정치가 누군가를 순식간에 총리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번에 드러난 파벌 정치의 한계가 결국 자민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3일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일본이 아직 낡은 정치를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밀실'에서 선출됐다는 이미지는 다음 총선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하는 스가 장관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일본 정치 전문가인 제리 커티스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치에서 파벌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예전처럼 파벌의 강력한 리더가 총리를 향해 달려가는 양상은 아니다"라며 "스가 장관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란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황시영 기자 app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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