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파급력에 정치적 노림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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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나비효과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화웨이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다. 미국의 압박에 반도체 수급길이 원천봉쇄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15일부터 미 상무부의 조치에 따라 미국 장비 및 소프트웨어 기술로 만들어진 반도체는 화웨이 공급이 중단된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국가보안법 초반 사태 당시 미국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쇼크다. 실제로 최근까지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라 압박했으나, 영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많은 나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실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 이후 "프랑스는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으며 도이치텔레콤은 지난 8월 13일(현지시간) 5G 장비사의 다각화, 즉 멀티 벤더 전략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도이치텔레콤 CEO 팀 회트게스는 정책 입안자들이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로 장비 공급사에 대한 선제적 금지 조치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과 이통사들은 그들의 5G 망 구축에 화웨이를 참여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미 상무부 조치는 화웨이의 손발을 묶는 수준을 넘어 최소한의 먹거리도 차단한다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막으려 자국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시키는 한편, 미국 기업의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공급도 막은 바 있으나 이번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중국 화웨이 공급을 차단한다는 제재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와 자국 기업의 거래를 차단했을 당시 화웨이는 대만 TSMC와의 연합으로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이런 가운데 TSMC가 미국의 손을 잡는 한편, 미국이 화웨이 전용 반도체 원천봉쇄에 들어갔을 때는 위탁생산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미디어텍과 협력했다.
그러자 미 상무부는 아예 화웨이로 흘러가는 반도체를 완전히 제로로 만들겠다는 제재를 꺼내들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 소프트웨어와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화웨이는 미디어텍을 통한 기성품을 전달받을 수 없고 제3국의 반도체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문제가 심각하다. 화웨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의 직접적인 거래가 차단됐을 당시에도 팹리스 자회사 하이실리콘에 설계를 맡기고 생산은 TSMC에 맡겼으나 TSMC는 화웨이의 손을 놨고 하이실리콘이 반도체를 설계할 때 사용하는 EDA는 메이드 인 USA다. 어떤 방식으로든 활로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내부의 구원도 요원하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EDA는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도 80% 중반대를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EDA 점유율은 글로벌 기준 0.6%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중국은 소프트웨어 반도체 부문에서 완벽한 열세에 빠져있으며 이를 단기간에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최근 미국의 지원을 받은 O-RAN(Open Radio Access Network)이 부상하고 있다 보도해 눈길을 끈다. 가상 및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이며, 일본 유통업체 라쿠텐이 관련 인프라를 조만간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화웨이의 5G 경쟁력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다.
당연히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의 입지는 줄어들수 밖에 없다.
물론 시장조사업체 델오르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 통신 장비 시장에서 3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1위 자리를 더욱 견고히 한 상태다. 이는 전년 동기의 28% 점유율보다 3%p 증가한 것이다. 노키아는 14%의 시장점유율로 2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점유율이 2%p 하락했다. 3위는 지난해와 같이 14%의 점유율을 기록한 에릭슨이 차지했으며, ZTE는 지난해 9%보다 2%p 오른 11%의 점유율로 4위에 올랐다. 5위는 시스코(6%), 6위와 7위는 시에나와 삼성전자로 조사됐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화웨이의 추락은 기정사실이다. 나아가 반도체 수급을 못해 제작 자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괴멸적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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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암 인수도 폭풍의 연속이다.
암은 반도체 칩 설계회사로 활동하면서 사물인터넷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실제로 암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셋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혁명을 발판으로 삼아 크게 몸집을 불린 상태에서, 사물인터넷 시대의 초연결 생태계 인프라 구축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평가됐다. 소프트뱅크는 이에 착안해 전격적으로 암을 품은 바 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가 자금난에 시달리며 암이 매물로 나왔고, 이를 엔비디아가 인수하게 됐다. 암 인수에 성공한다면, 엔비디아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두뇌를 가져가는 최강의 인공지능 회사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 보도하기도 한다. 이 역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거대한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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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로 찾아라"
국내 산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우선 화웨이 사태를 맞아 화웨이에 물량을 제공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단기적으로는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전체 반도체 매출 중 화웨이는 톱5에 들어가고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의 거래가 제일 많다"면서 "하반기 두 회사의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스마트폰 부품업체들도 연간 3조원어치를 화웨이에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판로가 모두 막히는 셈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반사이익도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화웨이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이 흔들리며 관련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전망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화웨이가 주춤거리며 점유율 확대의 호기를 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암 인수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일단 엔비디아의 암 인수는 국내 산업계, 특히 반도체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두뇌를 가져간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에 어떤 방식으로 라이선스 모델을 제안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암을 품으며 자사 라이선스 소지 기업들이 출하한 제품만 1800억 개에 달하는 등 그간 성공의 근간이 됐던 글로벌고객 중립성 또한 유지할 계획이라 밝혔다. 오픈 라이선스 모델의 운영을 계속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암이 보여준 파트너십을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앞으로 엔비디아가 전혀 다른 방식의 라이선스 모델 변경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산업계의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파운드리 업체인 삼성전자와 완전한 단절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파운드리 시장의 확장에 따른 TSMC의 물량 초과 현상이 벌어지며 삼성전자 파운드리에도 기회가 열리는 형국이지만, 7나노 이상 기술력을 가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를 엔비디아가 외면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아슬아슬한 삼성전자- 암 동맹이 이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SMIC 제재도 화웨이 제재와 비슷하게 국가안보 차원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산업계는 타격보다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SMIC가 중저가 파운드리 업체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SMIC 제재에 대한 반사이익이 유력하다.
한편 업계에서는 최근 반도체 업계의 굵직굵직한 사태를 관망하며 이면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큰 폭풍들이 정치적 이유로 출렁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SMIC 제재 가능성은 미중 갈등과 관련이 있고 엔비디아의 암 인수도 영국 기업의 미국 기업에 대한 인수라는 점에서 정치적 논란이 있다. 엔비디아의 암 인수 발표 후 로이터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엔비디아의 암 인수에 대해 명확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보도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최근 반도체 업계서 벌어지는 모든 이슈는 정치적 논란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이는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결단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냉정한 접근의 배경에는 최근의 상황이 시간과 관련있는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시간 싸움이라는 말도 나온다. 당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자 퀄컴이 화웨이와 거래를 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 설득에 나섰다고 전했다. 퀄컴은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매년 80억 달러(한화 약 9조5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삼성과 대만의 미디어텍과 같은 외국 경쟁업체들에 내주게 됐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중이다. 미국 반도체 업계도 나섰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무부 고위관리자 3명이 주요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대정부 로비 업무를 맡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미국 기업들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언제까지 정치적 이유로 화웨이를 압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나아가 화웨이가 반도체 수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얼마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시선이 집중된다. 정치적 시간싸움이 시작됐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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