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도 없고 감동도 없었다..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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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전 세계가 주목해 온 세계 최대 전기 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에는 100만마일(약 160만km) 배터리도, 전고체 배터리도 없었다. 전기 자동차ㆍ배터리 시장의 판을 뒤흔들 만한 혁신은 발표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투자자들은 실망하고, 배터리 업계는 안도하는 모습이다.
미국 테슬라는 지난 2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소재 공장 주차장에서 주주 총회와 배터리 데이를 열고, 이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4번이나 연기된 데 이어 이날에도 당초 예고된 시간보다 1시간 가량 늦춰졌으며,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주주들이 주차된 테슬라 차량 안에서 참여하는 드라이브 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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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의 등장에 주주들은 차량의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고 온라인 시청자 수는 한때 27만여명에 달하는 등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듯했으나, 이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냉소로 이어졌다.
한 달 뒤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를 베타 서비스로 선보인다는 등 기술적 성과를 짐작케 하는 내용이 있기는 했으나 배터리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신기술은 없었으며, 비용 절감을 향한 추상적 로드맵만 가득했다는 평가다.
이번 배터리 데이는 앞서 머스크 CEO가 "테슬라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행사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 무색하리만큼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날 테슬라 주가는 배터리 데이 직전에 전 거래일 대비 5.6% 떨어진 424.23달러로 장을 마쳤고, 이후 낙폭을 더 키워 시간 외 거래에서 한때 7% 가량 급락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슬라의 시가 총액은 이날 하루에만 500억달러(약 58조원)가 증발했다.
기가팩토리에서 테라팩토리로머스크 CEO는 "올해는 (테슬라에게 있어) 매우 힘든 시간"이라고 토로하는 한편, 코로나19발 수요 위축에도 불구하고 테슬라의 차량 출하가 전년 대비 30~4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지난해 약 36만7500대를 기록했던 테슬라 차량 판매는 올해 47만7800대에서 51만4500대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테슬라의 전기차 캐파(생산 설비 용량) 확대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머스크 CEO는 "전기차 제조보다 생산 설비를 설계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면서 "테슬라는 2020년 전기차 제조 기술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자평, 전기차 생산 규모 확충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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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3대륙 3공장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ㆍ중국 상하이ㆍ독일 베를린 등에 생산 라인을 신증설해 완벽한 기가팩토리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테슬라는 이를 통해 모델 S 플레이드ㆍ로드스터ㆍ세미 트럭ㆍ사이버 트럭 등의 생산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머스크 CEO는 테라팩토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테슬라는 자사의 전기차 생산 공장들에 기가팩토리라는 이름을 붙여 왔는데, 전력량을 나타내는 단위를 기가와트(GW)에서 테라와트(TW)로 올림으로써 생산 능력의 혁신적 향상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1TW는 1GW의 1000배이며, 1조와트(W)에 해당한다.
또 테슬라는 전기차 연간 2000만대 생산이라는 새로운 목표량을 제시했다. 제너럴모터스(GM) ㆍ폭스바겐ㆍ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평균 생산량보다 대략 2배 많은 수준이다.
차세대 배터리는 기존 2170 배터리 확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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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CEO는 이날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기 위해서는 배터리 단가를 낮춰야 하는데,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들은 너무 (에너지 용량이) 작고 비싸다"고 지적하면서, 테슬라의 차세대 배터리에 대해 소개했다.
머스크 CEO에 따르면 새로운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용량 5배↑ 출력 6배↑ 주행 거리 16%↑ 생산 비용 14%↓ 등으로 개선된 원통형 4680(지름 46mmㆍ높이 80mm) 배터리로, 3~4년 안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는 현재 적용하고 있는 2170(지름 21mmㆍ높이 70mm) 배터리의 크기를 2배 이상 확대해 열 효율을 높인 제품으로, 신속한 재충전이 필요한 전기차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머스크 CEO는 "대부분의 자동차는 250~300마일(약 400~480km)의 주행 거리로 충분하지만, 트럭ㆍ레저용 차량(RV)ㆍ장기 여행용 차량 등의 경우 더 긴 주행 거리가 요구된다"며 "4680 배터리가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4680 배터리로 전기차용 배터리 비용은 1년 반 뒤 56% 줄어들 것이라는 진단이다.
구체적으로 일단 배터리 조립 등 제조 방식을 개선해 배터리 셀 생산 비용을 18%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머스크 CEO는 배터리 성분에서 코발트를 없애는 대신 니켈 비율을 100%로 높이고 실리콘 기반의 양극재를 적용하면 배터리 비용의 17%를 절감 가능하며, 배터리 팩 디자인 및 결합 등을 바꿔 추가적으로 7%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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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CEO는 이 같은 배터리 기술을 통해 3년 뒤쯤에는 2만5000달러(약 2900만원)짜리 테슬라 전기차를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만5000달러는 현 전기차 판매 가격의 50% 이하 수준으로, 머스크 CEO는 사실상 반값 전기차 시대를 선언한 셈이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려면 주행 거리 뿐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내연 기관 자동차에 필적하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전기차 가격이 내연 기관 차보다 낮아지는 시점은 오는 2024년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머스크 CEO는 그 시점을 1년 정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보급 확산을 위해 가격 인하는 타당한 전략이지만, 현지 언론들은 신빙성이 떨어질 만큼 급진적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머스크 CEO는 테슬라 모델 3를 3만5000달러(약 4000만원)에 내놓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평균 5만달러(약 5800만원)에 팔아 왔다"며 "앞서 제시한 판매가도 실현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저렴한 신차를 예고하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농락"이라고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시장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세간은 그간 배터리 데이를 두고 테슬라가 중국 CATL과 공동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160만마일 배터리이나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전지에 대한 성과가 발표될 것으로 추측해 왔지만, 이날 언급된 4680 배터리는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평가다.
자체 배터리 생산 규모, 2022년에는 LG화학과 맞먹는다?테슬라는 이날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테슬라가 이미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개발하는 러드러너 프로젝트에 돌입했으며, 배터리 설계 및 대량 생산을 위해 캐나다 배터리 생산 설비 업체 하이바시스템스와 미국 배터리 업체 맥스웰을 인수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생산 능력은 내년 9월 경 10기가와트시(GWh) 규모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며 2022년 100GWh, 2030년 3TWh(테라와트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100GWh의 캐파는 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1위 업체인 LG화학이 올해까지 구축할 것을 목표하는 규모다.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수직 계열화는 속속 포착되는 흐름이나, 배터리 대량 생산 경험이 없는 테슬라가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자 사뭇 시선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전망은 갈린다. 테슬라가 장기적으로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의존을 줄여갈 것은 명확하나, 2~3년 내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김광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단기간에 대규모 배터리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테슬라가 제시한 배터리 생산 규모 목표는 상징적인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며 "배터리 공급 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 또한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 생산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머스크 CEO는 배터리 데이 전날인 이달 21일 트위터를 통해 "파나소닉ㆍLG화학ㆍCATL 등으로부터의 전기차용 배터리 수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 생산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나, 2022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난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므로 물량 확보에 힘쓸 것"이라고 부연한 바 있다.
사실상 테슬라의 배터리 대량 생산이 2022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한 셈이다. 따라서 배터리 업계도 이변은 없었다며 한숨 돌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테슬라의 2년 내 대규모 배터리 생산 시스템 구축이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머스크 CEO는 일견 무리인 듯한 목표도 일단 선언해 놓고 결국 이루곤 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했다. 또 테슬라가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배터리 생산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배터리 내재화에 오히려 배터리사 영향력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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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날 배터리 데이는 종전까지 알려진 전략을 재생산하는 데 그쳤으며,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ㆍ생산 및 원가 절감 등도 현재 배터리 업체들을 위협할 만한 요인이 못 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오히려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테슬라가 차세대 배터리 자체 생산을 공식화했음에도, 기존 배터리 공급사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테슬라는 현재 LG화학과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 받고 있다. 특히 LG화학과 파나소닉의 배터리는 모델 3에 탑재되는데, 바로 2170 배터리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테슬라가 차세대 배터리인 4680 배터리를 양산하기 위해 2170 배터리 공급사들에게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는 테슬라의 수직 계열화 계획으로 배터리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으나, 이번 배터리 데이로 소멸됐다"며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는) 오히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CATL의 경우 예상과 달리 배터리 데이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테슬라가 코발트 프리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테슬라의 중국향 단거리용 전기차에 CATL의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여전히 제기된다
테슬라가 배터리 단가 인하를 추진하는 것 또한 새로운 리스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LG화학ㆍ삼성SDIㆍ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배터리 원가 절감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테슬라의 원가 절감 전략은 전기차 시장의 혁신을 촉진할 재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테슬라가 3년 후 2만5000달러짜리 전기차를 출시할 수 있다고 공언한 만큼, 다른 전기차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면서 정말 전기차 보급 확산 시점이 더 빨리 도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 위원은 "2만5000달러짜리 차량이면 관세가 붙어도 국내에서 3만달러(약 3500만원) 이내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는데, 이는 (현대자동차) 쏘나타 수준"이라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 면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언급했다.
한편 이번 배터리 데이 경우 한방은 없었지만, 전기차 시장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명료히 가리켰으며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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