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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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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맛집서 탄생한 상큼한 퓨전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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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26. 로열티 없는 그리스로마 신화


한겨레

슈퍼자이언트게임스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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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창작자들이 신화를 사랑한다. 신화는 그 자체로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이야기들 중 하나다. 하지만 신화는 보통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진짜’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 속 신들에게 진심을 다해 기도를 바치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수수께끼를 그 이야기 속에서 찾았다. 그러니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매료된 사람들이라면 신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거창한 이유만으로 신화가 창작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신화는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건, 상징, 캐릭터들로 가득한 저장고 같은 것이다. 가령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당신이 하는 어떤 게임에서라도 등장할 수 있으며, 꽤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것은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등장시키기 위해서 올림포스산에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디즈니마저도 노르딕 신화 천둥의 신 토르를 독점하지는 못한다.

<하데스>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신화계의 최고 인기 장르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게임의 주인공이자 저승의 왕자인 자그레우스(원래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아들이다)는 어느 날 자신이 하데스와 닉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라, 페르세포네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를 찾아가 연유를 묻지만 하데스는 강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그의 궁금증을 묵살해버린다. 결국 자그레우스는 의문을 풀기 위해 저승을 벗어나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하데스는 그를 곱게 내보내줄 마음이 없었고 왕자는 저승의 수많은 괴물과 혼령들과 싸우며 힘겹게 지상으로 향한다.

이 게임은 최근 몇년간의 인디게임계 트렌드를 고루 갖추고 있다. 절차에 따라서 랜덤하게 던전이 생성되는 로그라이크(rogue-like) 형식을 차용하고, 근사한 색감과 멋진 원화를 바탕으로 하는 2.5D 그래픽을 선보인다. 2018년 12월에 ‘앞서 해보기’로 판매를 시작했으며, 1년간은 에픽 스토어에서만 독점으로 판매했다. 그리고 장장 2년여에 걸친 업데이트 끝에 올해 9월 드디어 정식 1.0버전을 출시했다.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치고는 랜덤 요소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자그레우스는 출발하기 전에 6종류의 무기 중에 하나를 고르고, 자신의 앞길을 더 어렵게 만드는 페널티도 선택할 수 있다. 적들의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고, 각 층마다 등장하는 보스도 똑같다. 게임을 랜덤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자그레우스가 던전에서 얻게 되는 파워업인 올림포스 신들의 축복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그레우스가 지상으로 향하는 것을 응원하며 축복을 통해 특수 능력을 부여하는데, 이 조합과 각 무기의 특징들이 만나서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만들어낸다.

결국 지상에 도착하는 데 성공해서 최종 보스를 쓰러뜨려도 자그레우스는 이런저런 원인들로 죽음을 맞이하고 하데스의 궁전으로 돌아온다. 죽음과 반복은 수많은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반복되는 전투의 즐거움만으론 하데스의 매력을 다 설명할 수 없다.

<하데스>는 다른 로그라이크와는 다르게 스토리에, 특히 캐릭터들의 관계와 대화에 많은 공을 들인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신들과 영웅들은 게임 속의 변화에 반응하며, 플레이어가 이룩한 업적들은 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이를 통해 자그레우스의 모험은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 권위적이고 무자비한 아버지가 지배하는 지하궁전을 술렁이게 하는 과감한 반항이자 사랑과 우정을 위한 여정이 된다.

하데스는 수천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신화 맛집’에서 내놓은 새로운 퓨전요리다. 게다가 쓸데없고 안일한 소수자 혐오 같은 것도 첨가되지 않았다. 그러니 안심하고 자그레우스의 불효에 동참해보자.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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