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을 이용해 20분 만에 백악관에 도착한 뒤 곧바로 2층 발코니로 올라갔다. 그는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넣은 뒤 양손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거수경례를 하며 '포토 타임'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발코니에서 촬영해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 메시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한 가지 확신하게 된 점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게 내버려두지 말라"면서 "내 몸 상태는 20년 전보다 좋고 아마도 면역이 됐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부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기 퇴원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는 이날 "대통령이 아직 숲에서 완전히 나온 것은 아니다"면서도 "의료진은 건강 상태에 대한 평가를 거쳐 퇴원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퇴원 이후에도 전문 의료진이 백악관에서 치료와 검진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일터로 돌아가야 하며 내가 전면에 서겠다"면서 "우리는 최고의 의사와 약품을 갖고 있고, 백신도 곧 출시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발생한 '악재'를 오히려 반전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란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사실상 극복했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공포를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자신 있게 던졌지만, 유권자들이 이 메시지를 수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이날까지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21만명을 돌파했고, 12월 말까지 15만명이 더 숨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두고 감염자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야당과 반(反)트럼프 언론 쪽에서 즉각 제기됐다. 로버트 메넨데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미국인이 당신과 똑같은 치료를 받기를 바라지만 (현실은)그렇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2층 발코니에 서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포토 타임'을 가진 것을 두고도 또 한 번 잘못된 메시지를 국민에게 던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보수 진영 언론들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퇴원 소식에 증시가 상승 반전한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원과 함께 선거운동을 서둘러 재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선거운동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며 "가짜 뉴스는 가짜 여론조사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14%포인트 차이로 뒤진다는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NBC 공동 여론조사 등을 '가짜'라고 규정하며 지지층 동요를 막으려는 의도다. 지난달 같은 기관 조사에서 두 대선 후보 간 격차는 8%포인트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선거운동 조기 복귀가 간절한 시점이지만 완치 이전에 경합지 대면 유세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자는 증상이 처음 나타난 뒤 최소 10일간 타인과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또 중증을 경험한 경우엔 최대 20일간 자택에서 격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갈 길 바쁜 트럼프 캠프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자녀들을 대면 유세에 투입하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과 조기 퇴원에 대해 바이든 후보는 직접적 비난은 피하면서도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NBC 주최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그가 잘 이겨내는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도 "미국인들은 마스크 착용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걱정하지 말라는 트윗을 했지만 21만명이 숨진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누구도 이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은근히 꼬집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퇴원에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이 이날 추가로 확진되는 등 백악관 내 확산이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CNN은 또 다른 대변인실 직원 2명도 감염됐다고 보도했지만 백악관은 구체적으로 직원 몇 명이 감염됐는지 공개하기를 거부했다.
앞서 호프 힉스 백악관 보좌관, 트럼프 대통령 수행원인 닉 루나 보좌관 등 줄잡아 10여 명의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출입기자 중에서도 최소 3명이 감염됐다. 백악관은 일단 다수 직원을 재택근무로 전환했지만 시설 관리나 음식 조리를 담당하는 하위직 직원들은 불안감이 크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백악관은 또 격리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기존 집무실인 오벌오피스 대신 백악관 1층에 위치한 지도방(map room) 등 2곳을 비워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조치했다. 지도방은 원래는 언론 인터뷰나 휴게실 등으로 사용되는 장소다. 입원 중이던 이날 오전 폭풍 트윗으로 지지를 호소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트윗 유세전'을 계속할 전망이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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