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외무장관에 철거협조 요청 직후 지자체 “14일까지 철거하라” 공문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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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까지 직접 나선 일본의 외교전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는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번 문제에 정부 차원의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일본은 정부가 나서 한국 민간단체의 활동을 제한하는데, 외교부는 시종일관 원론적 입장만 밝히며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는 일 정부가 독일 정부에 ‘소녀상 철거’ 로비를 하는 동안 관련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독일에 우리 측 입장을 피력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청은 지난 7일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오는 14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미테구청은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로 철거하고 관련 비용을 코리아협의회에 청구하겠다고도 했다.
9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옆에 적힌 설명문을 읽고 있다.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청은 지난 7일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시민단체에 오는 14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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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구청은 철거 명령 이유로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碑文)을 설치, 독일과 일본 간의 관계에 긴장이 조성됐다”며 “국가 간 역사 논쟁에서 한쪽을 돕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녀상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며 “공공장소의 (정치) 도구화를 거부한다”고도 했다.
이에 코리아협의회는 12일 베를린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법적 대응할 방침이다. 베를린 소녀상은 지난달 25일 독일에서 세 번째로 세워졌다. 앞의 두 소녀상과 달리 베를린 소녀상은 공공장소(지하철역 인근)에 설치됐다.
이번 철거 명령은 일본 ‘총력외교’의 결과로 풀이된다. 모테기 일 외무상이 독일 정부에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한 직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화상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쓰인 비문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읽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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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지난달 29일 베를린에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진 것에 대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0일 일본의 집요한 외교가 베를린 소녀상 철거 결정으로 연결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점을 확인한 2015년 합의 취지를 정중하게 설명한 것이 소녀상의 설치 허가를 취소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소녀상 제작을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 독일 측에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정의연은 11일 “일본 정부와 우익 단체의 소녀상 철거 압력과 베를린시 미테구의 철거 공문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폄하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 표현의자유·여성폭력·문화권 특별보고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외교부는 대응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는 관련 상황을 주시하면서 적절한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사흘이 지난 11일에도 별다른 대응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정권의 반일·극일 정책에 동조하던 외교부가 정작 해외 소녀상 철거 등 일본 정부의 공세에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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