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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별세] 풍운의 일보, 초일류에 대한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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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이 부회장이 걸어온 풍운의 일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 결단의 순간마다 역사의 거대한 강이 바뀌곤 했다. 일류를 향한 그의 도전이다.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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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에 취임하며 약속했다.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꿈. 당시 사람들에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지만, 세월 속에 하나씩 하나씩 실현되었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시간을 돌려 1974년.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갖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한 이유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그러나 도전을 택했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그는 발로 뛰며 인재들을 모았다. 나아가 반도체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삼성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성과는 나왔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어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랐다.

일류를 향한 꿈은 애니놀 신화로 이어졌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물론 어려운 길이다. 야심차게 출시한 옴니아가 '쓰레기'라는 비야냥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손수 '화형식'을 단행하며 임직원들의 느슨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이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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