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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별세]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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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건희 회장이 25일 오전 숙환으로 변세한 가운데, 그가 걸었던 위기극복의 역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안주하지 않았고, 또 움직였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모두가 기뻐했고, 이 기적적인 승리에 환호했다. 단 한 사람. 이건희 회장을 제외하고.

이 회장은 성공 뒤 찾아올 위기를 직감하고 있었다. 1993년 오사카 회의에서 "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습니다"라는 말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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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선언에 나서는 이건희 회장. 출처=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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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예언은 적중했다.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졌다. 무엇보다 삼성의 명예가 실추되는 순간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발견했다. '삼류'로 전락한 삼성.

이 회장은 분노했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며 모든 것을 바꾸라는 충격적인 로드맵을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행간이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일각에서 선언이 아닌 회의로 부르는 이유다. 이어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중이던 이건희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모여든 사장들에게 일갈했다.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

이후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우연일까.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모두가 쓰러져가는 상황. 그러나 미리 겨울을 준비한 삼성은 거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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