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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2020 미국 대선

트럼프, 재검표 요구·소송 언급…되살아난 20년 전 '플로리다 악몽' [혼돈의 美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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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방송서 언급되는 ‘행잉 채드’(hanging chad)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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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새벽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연설을 마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통령 선출 ‘매직넘버’에 6명 모자라는 264명을 확보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조지아의 개표에 대한 재검표 등을 요구하는 소송 제기를 언급하면서 20년 전 ‘플로리다 재검표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폭스뉴스 등 미 언론은 ‘행잉 채드’(Haning chad)를 다시 보게 됐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2000년 11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맞붙은 민주당의 엘 고어 부통령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플로리다주 개표결과에 불복하며 소송전으로 비화한 이 사건은 결국 대선일 36일만에 연방대법원의 판단으로 부시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2020년과 2000년의 상황은 차이가 있지만 대선 후보가 소송을 내면서 연방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이 본격화하면 20년 전 미국이 두동강 난 것처럼 혼란이 가중되고, 또다시 연방대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불편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 11월 7일 치러진 대선에서 고어 후보는 전국 지지율과 막판 선거인단 수에서 모두 앞선 상황에, 25명(현재 28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주 개표결과 1784표 차로 패하자 재검표를 요구했다. 당시 사표가 1만750표나 나온 게 결정타였다. 1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지방 관리 선거에 투표하려고 수시간씩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부시 후보는 “대통령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유권자 권리”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IBM사가 자동 투표기 오류를 인정하면서 의혹을 키웠다. 투표용지에 자동으로 구멍을 뚫을 때, 종이조각(chad)이 용지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아무에게도 표를 던지지 않은’ 사표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IBM은 “당일 늦게 투표할 경우 깔끔하게 뚫리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했고, 미 언론은 ‘용지에 달린 천공 조각’(Haning chad)이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게 됐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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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벳시 카마르도(Betsy Camardo)가 중앙 개표대 밖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선거 1주일 뒤 재검표에서 300표 차로 좁혀졌다. 이어 해외 부재자 투표를 포함한 2차 재검표에서는 930표차로 벌어졌다가 11월 26일 마지막 재검표에서는 537표차로 부시 후보의 우위가 이어졌다.

고어 후보는 결국 ‘수작업 재검표’를 원했는데, 이 과정에 부시는 ‘재검표를 멈춰달라’고 먼저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전이 본격화했다. 대선 보름 뒤,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수작업 재검표를 인정했지만, 이에 격분한 공화당 지지자들은 재검표 위원회 사무실로 몰려가 “투표 사기다, 우리도 보게 해달라”고 외치며 연일 시위를 벌여 대혼란이 이어졌다. 일부 언론은 재검표 저지를 위해 부시 측의 ‘작전 버스’ 수십대가 플로리다에 급파됐고, 모든 시위를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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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대법원은 12월 8일 수작업 재개표 명령을 내렸고, 이튿날 연방대법원은 공화당긴급요청을 받아들여 재개표 중단 명령을 내렸다. 12월 9일 오전 9시 재개된 재개표는 몇시간만에 중단됐다.

대법원은 12월 12일 오후 10시 5대 4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작업 재검표 명령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모든 주가 선거 관련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마감시한을 불과 두 시간 남겨둔 결정이었다. 62쪽에 달하는 판결문은 수작업 재검표를 하면 유효표 판단기준이 달라져 평등권을 침해하고, 정당하게 개표할 시간이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고어는 12월 13일 오후 9시 “대법원 판단에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겠다. 패배를 인정한다”고 연설했고, 부시는 한 시간 뒤 당선 소감을 밝히고 대선 36일만에 전국 지지율 48%, 선거인단 271명을 겨우 얻어 대통령이 됐다. 미 언론은 당시 위헌 판결에 동참한 대법관 5명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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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뉴욕에서 열린 'Count Every Bottle' 집회에서 시민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선거 소송은 우편투표 도착 기한 연장과 관련 특정 시점 이후의 표는 개표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투표 격차가 너무 근접한 경우 등으로 전해졌다. 20년 전 ‘표를 다시 살펴달라’는 주장이 되살아난 것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의 보수 대 진보 구성은 6대 3이고, 보수 대법관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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