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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월마트 쫓아냈지만 쿠팡에 쫓기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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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유통산업] 상생의 틀 다시 짜자 (상)



3번째 지각변동

① 1990년대 대형마트 급성장

② 전통시장과 상생 위해 규제

③ 이젠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아직 대형마트 규제에 초점

빠르게 바뀌는 유통 환경


한겨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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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미국 월마트는 회원제 서비스 ‘월마트 플러스’를 내놨다. 1년에 98달러(약 11만원)를 내면 식료품 무료배송 및 16만개 품목 당일배송, 오프라인 점포 전용계산대 이용 등의 서비스를 받는 상품이다. 미국 언론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겨냥한 서비스라고 풀이했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월마트의 존재감은 아마존과 비교할 수준조차 못 된다.

이는 미국만의 고유한 현상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통업의 지각변동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마트의 연간 영업이익(별도 기준)은 2018년부터 감소 중이다. 롯데마트(롯데쇼핑 할인점부문)는 2015년부터 매출마저 줄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롯데온’(롯데), ‘에스에스지(ssg)닷컴’(신세계) 등 전자상거래에 뛰어들었지만, 쿠팡이나 이베이코리아에 맥을 못 추고 있다.

■ ‘마트 규제법’, 처음엔 ‘마트 진흥법’
국내 유통산업은 1990년대 이후 세 차례의 변곡점을 거쳤다. 이때마다 유통업을 바라보는 정부·정치권의 시각은 함께 출렁였다.

첫 변화는 1993년 국내 1호 대형마트인 이마트 창동점이 불러왔다. 대형마트는 대량구매를 바탕으로 한 ‘상시할인점’ 개념을 앞세워 소비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전에는 의류나 사치품은 백화점에서, 신선식품과 생활용품은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규모 할인행사도 백화점 정기세일이 전부였다. 정부와 정치권도 대형마트의 등장에 우호적이었다.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소비 진작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고 봤다. 1996년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라 월마트·까르푸 같은 외국계 대형마트가 국내 진입할 길이 열리며 ‘토종마트’에 위기가 찾아오는 듯하자, 정부와 정치권은 대형마트 개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제정으로 토종마트의 숨통을 틔워줬다. 격변기에 월마트·까르푸 등은 토종마트에 밀려 한국 시장을 떠났다. 국내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빠른 성장세는 유통법 제정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성장기에 유통법은 ‘토종마트 진흥법’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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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이 골목 파고들자 등장한 규제
대형마트가 성숙기에 접어든 2010년대 들어 유통법의 성격도 달라졌다. 몸집이 커진 대형마트의 부작용에 정부와 정치권이 주목했다. 2012년 개정으로 유통법은 대형마트 규제법으로 성격이 바뀐다. △월 2회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정한 요일에 의무휴업 △밤 12시~오전 10시 영업 제한 △전통상업보존구역 1㎞ 이내 출점 제한 등의 규제가 도입된 것도 이즈음이다.

여기에는 2000년대 중반 대형마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형태로 골목상권에 공격적으로 진입한 게 영향을 미쳤다. 2003년 전국 429개였던 기업형 슈퍼는 2010년 889개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실제 2007년 대형마트 3사 매출(28조3천억원)이 전통시장 매출(26조7천억원)을 처음 추월한 뒤 둘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당시에는 ‘전통마트 대 대형마트’라는 구도가 맞았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소형점포는 살아날 거란 취지로 유통법이 개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번째 변화는 최근 수년 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통산업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분석한 올해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 백화점(14.2%)과 대형마트(5.6%), 기업형 슈퍼마켓(4%)은 모두 매출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온라인 매출은 같은 기간 17.5% 증가했다. 매출 비중도 지난해 상반기엔 오프라인 대 온라인이 59 대 41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엔 54 대 46으로 차이가 줄었다.

코로나19는 이런 ‘전환’의 속도를 더 높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6월 발표한 전자상거래 트렌드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전자상거래의 편리성을 체험한 소비자들이 앞으로 온라인 쇼핑을 지속하고, 기업도 비대면 판매 채널을 활용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의 확장세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한 대형 유통업체 임원은 “오프라인 점포는 생존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며 “온라인 부문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쉽지 않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 플랫폼·배달앱 전성시대…“유통법 대대적으로 손볼 때”
최근 수년간 유통 환경의 변화와 달리 정부와 정치권의 시선은 여전히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국회엔 전자상거래보다는 오프라인 유통업 규제 관련 법안이 쏟아진다. 지난 5월 출범한 21대 국회도 다르지 않다.

정부도 온라인 시장에 대한 관심도를 키우고 있으나 속도는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갑질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온라인플랫폼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지난 9월에야 입법예고했다.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재편되고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지만 이를 총체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률조차 없다는 뜻이다.

한 예로 배달앱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을 꼽을 수 있다. 배달의민족의 ‘비(B)마트', 요기요의 ‘요마트'는 임대료가 저렴한 주택가에 창고를 짓고, 식품과 생필품 등을 30분 안에 배달하고 있다. 이들 배달앱은 사실상 오프라인 영업을 하지만 ‘온라인 무점포 소매’로 신고해, 편의점 등이 받고 있는 오프라인 점포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특히 요기요는 편의점 배송을 대행하며 쌓은 빅데이터를 요마트 운영에 활용한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한국유통학회 차기회장)는 “오프라인 규제를 강화하든 약화하든 간에 (전통시장 매출로 이전하는 데에) 이제 큰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며 “전자상거래 업체 간 경쟁 심화로 불거지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전통시장 반경 20㎞로…대형마트 입점 제한 확대” 의원님, 이 법안이 현실과 맞습니까?

‘전통시장 반경 20㎞ 내 대형마트 입점 제한’,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일 적용’….

21대 국회에서도 골목상권 보호를 내세웠으나 변화된 유통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대형 소매점포의 입점규제를 강화한 법안으로는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전통상점가 경계에서부터 1㎞ 이내인 전통상업보존구역을 ‘20㎞ 이내’로 넓히는 내용을 담았다. 전통상업보존구역엔 대형마트나 준대규모 점포는 입점할 수 없다. 김정호 의원 쪽은 “대형마트에 갈 때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1㎞ 범위는 (전통상권 보호에) 의미 없다고 봤다. 20㎞는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상권 보호나 유통 환경을 고려해 융통성 있게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형마트들은 수익성 악화 탓에 신규 출점 중단과 기존 점포 정리에 여념이 없다. 유통업 현실은 입법자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 롯데마트는 올해에만 전국 12개 점포를 닫을 예정이고, 홈플러스도 점포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대형 유통기업 관계자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을 20㎞로 넓히더라도 어차피 대형마트는 더는 신규 점포를 열기 어렵다. (김정호 의원안은) 지역 표심을 고려한 법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복합쇼핑몰도 월 2회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법안도 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유통법 개정안은 지자체장이 복합쇼핑몰에 대해서도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을 명령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홍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대형 유통기업의 복합쇼핑몰 진출 확대로 지역상권 붕괴가 가속화되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합쇼핑몰의 골목상권 침해 여부도 논란거리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7년 복합쇼핑몰 인근 상권의 추정 매출과 점포 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 복합쇼핑몰 입점 전후 6개월간 인근 점포 수가 감소했다. 기존 상인의 ‘내몰림 효과’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반면 유통업계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복합쇼핑몰도 온라인 영향 탓에 휴게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런 양상과 발의되는 법안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휴게 공간이 돼가는 복합쇼핑몰의 전통시장 매출 잠식 부작용은 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국회가 법안을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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