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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코로나 도시’ 대구의 기적…전국 500명 확진때 나홀로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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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악몽 떨쳐낸 비결은…

지난 29일 대구시 번화가인 동성로의 교보문고 대구점 입구에 마스크를 쓴 방문객 10명이 두 줄로 서 있었다. 앞뒤로 1m씩 거리를 뒀다. 모두 체온 점검 기계를 통해 정상 체온임을 확인한 뒤 손소독제를 뿌리고서야 서점으로 들어갔다. 앞뒤 사람 간격을 두고 줄을 서라고 안내하는 직원은 따로 없었다. 방문객들은 스스로 간격을 두고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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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하루 최대 741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던 대구가 30일까지 약 한 달간 일일 신규 확진자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확진자 569명이 나온 지난 27일에는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확진자 0명이었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시작으로 요양병원·콜센터 등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라 발생하며 도시 전체가 봉쇄되는 ‘코로나 악몽’을 겪었던 대구로서는 기적 같은 기록이다.

대구 시민들은 엄청난 자제력과 스스로를 다른 지역과 격리하는 희생적인 자율 봉쇄로 당시의 위기를 넘겼다. 수백명씩 확진자가 쏟아질 때, 대구의 어르신들은 외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에게 “대구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며 찾아오는 걸 막았다. 다른 지방의 친지 집으로 피신하지도 않고 대구에서 코로나와 싸웠다. 당시 몸에 밴 자제와 자율적인 방역 지침 실천이 ‘확진자 0’ 행렬을 만들어냈다.

지난 8월 대구 한 빌딩에서 발생한 동충하초 사업 설명회 감염 사례를 제외하면 3개월 이상 집단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30일 확진자 10명이 발생한 이후 11월 한 달간 한 자릿수를 유지했다. 11월 한 달 중 엿새는 확진자가 0명이었다. 11월 전체 신규 확진자 수를 합해도 58명에 그쳤다.

대구는 30일 현재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를 유지한 곳이다. 1일부터는 대구도 1.5단계에 들어가지만, 대구의 확진자가 늘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최근 확진자 증가세가 가팔라 정세균 총리 주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전국을 1.5단계 이상 지역으로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 진통을 겪은 대구 시민들의 방역 실천은 남다르다. 아주 미약한 증상만 보여도 즉시 검사를 받는 ‘빠른 검사 받기’와 ‘마스크 착용’ 등 두 가지 방역 지침을 시민 모두가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대구시 8개 구·군 보건소 인근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는 줄을 서서 코로나 검사를 받는 시민 수십 명을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확진자 파악이 용이해져 집단감염으로 번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방역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헬스장에선 달리기 등 숨이 차는 유산소 운동을 할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러닝머신도 하나 걸러 하나씩만 작동시킨다. 호흡 중 비말 감염 위험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다. 덤벨 등 운동 기구를 사용하기 전후로 손이 닿았던 부분을 소독제로 씻는 사례도 있다. 헬스장을 이용하는 배모(31)씨는 “땀이 묻으면 수건으로 닦는 것처럼, 혹시라도 감염되지 않도록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는 대구의 음식 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다. 각자 개인 접시에 덜어 먹는 식습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직장인 박원석(36)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여럿이 모였을 때 국을 덜어 먹으면 유난스럽다며 놀림받았다”면서 “요즘은 놀리던 친구들이 식당 가서 먼저 개인 접시를 요구한다”고 했다. 특히 식당에서 음식을 낼 때 철저하게 방역 수칙을 지킨다. 식당 주인 A씨는 “수저통을 통한 감염을 우려해 최근에는 개별 포장된 나무젓가락만 쓴다”고 했다. 회사원 이모(45)씨는 “젓가락도 함께 쥐다 보면 손이 계속 닿기 때문에 반찬용 젓가락을 따로 달라고 요청한다”며 “아예 학교 급식 때처럼 개인 수저를 갖고 다니는 동료도 있다”고 했다.

1일부터 대구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1.5단계가 실시되면서 일반 공연장과 스탠딩 공연장에서의 함성 및 음식 섭취가 금지되고, PC방·독서실 등에서의 음식 섭취가 금지된다. 요양·정신병원 및 사회복지 시설에선 영상 면회만 허용된다. 민복기 대구시 트윈데믹 대책추진단장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방역 수칙에 대한 시민의 동참이 최고의 백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대구=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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