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국민의힘 계열 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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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78)이 15일 ‘탄핵의 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 숙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이라고 표현하는 등 사과 수위가 예상보다 높았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앞서 당을 쇄신하고, 중도층 민심을 끌어안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나홀로 사과’에 그친다면 그간 말 뿐이었던 당 혁신 행보처럼 사과 메시지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보수 세력이 반문재인(반문) 결집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분열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예고할 때부터 당 안팎에선 전직 대통령의 과오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내 반발을 감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김 위원장이 발표한 1600자 분량의 ‘5분 사과’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법처리된 구체적인 혐의와 그동안 당이 보여준 구태 등이 강한 표현으로 채워졌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혐의를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국정에 개입해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죄상”이라고 언급했다. 특정 기업의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재벌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도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고 말했다. ‘사과’ ‘반성’ ‘성찰’이라는 표현만 10여차례 등장했다. 당내에서도 “생각보다 표현 수위가 높았다”(한 대구 의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 위원장의 사과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도 희망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는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요구에 애매모호한 태도로 넘어갔고 이는 패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 위원장이 최근 비대위 회의에서 “사과를 못하게 한다면 비대위원장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며 배수진을 친 것도 이런 위기 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 사과가 당 전체의 쇄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8월 김 위원장은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고 ‘무릎 사죄’를 했지만 당 차원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비판이 여전하다. 당시에도 김 위원장 ‘나홀로 사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장에도 김 위원장 혼자 섰다. 앞서 3선 의원들의 집단 항의 등 반발이 터져 나왔고 주호영 원내대표도 “당내 반대 의견이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내분도 감지된다. 영남 지역에선 현 정부를 출범시킨 데 대한 책임과 반성이 주내용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등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수도권 민심에만 매몰돼 전통적 지지층은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은 당초 예고한 사과 시점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 중진 의원들과도 식사하고, 14일에는 대구 지역 초·재선 의원들과 만찬을 하기도 했다. 당내 불만을 다독이고,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의원들에게 사과문의 취지를 설명하며 설득했다. 그러나 대국민 사과 이후 물밑 갈등을 완전히 봉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 사과에 대해 당 일각에선 “고정 지지층만 분열시킬 것”, “하필 이 시점에…” “사과가 아닌 고집”이라는 지적이 분출됐다.
심진용·임지선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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