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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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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안철수 서울시장 출사표, ‘비겁한 철수씨’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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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말이 거칠어졌다. 사나이의 억센 숨결이 느껴지기도 한다. 약이 바싹 오른 독사처럼 이빨을 드러낸 것 같은 기세를 풍기기도 한다. 어제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 일성이 이렇다. “야권의 단일 후보로 정권의 폭주를 멈추겠다.”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했다. “무도한 정권의 심장에 직접 심판의 비수를 꽂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출사표를 던지는 마당이니만큼 강도 높은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세다.

단일 후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는, 아름다운 표현들을 일단 내려놓자. 보다 현실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안철수는 ‘결선 시드’를 배정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저 밑바닥 예선전부터 치르고 올라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후보 경선을 치를 때부터 함께 경쟁을 하는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면 이것은 안철수 대표가 우선 국민의힘에 입당한 다음 서울시장에 처음 도전하는 야권 후보들과 경선을 같이 치른다는 뜻이다. 아니면 안철수 대표에게 서울시장에 여러 번 도전했던 과거 경력을 인정해주고, 그리고 19일~20일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서울 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듯 안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에서 범야권을 통틀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서 결선 시드를 배정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국민의힘의 후보들끼리 경선을 치러 후보를 결정한 다음, 안철수 후보와 1대1로 결선을 붙어서 최종 야권 후보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오늘 아침 많은 신문들이 ‘반문(反文)연대 가능할까’ 라는 제목을 달았다. 다른 곁가지 쟁점을 다 떠나서 오로지 문재인 정권의 폭주만큼은 막아야 하니 무조건 야권 후보를 단일화를 하자는 것이 반문연대일 터인데, 그것이 안철수 대표가 희망한 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낙관이 반(半), 비관이 반(半)쯤 섞인 말이었다. 후보 경선과 단일화라는 과정이 잘만 하면 유권자의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서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추한 꼴만 노출하고 말면 기왕 있었던 지지자도 등 돌리게 만드는 역효과가 난다.

안철수 대표는 어제 출마 회견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은 하나 마나이며,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했다.” 이 말은 앞부분은 맞은데 뒷부분은 좀 따져봐야겠다. 안 대표는 결자해지라는 말로 9년 전인 2011년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양보했었던 때를 떠올리고 있다. 물론 자신은 이듬해 치러지는 대선에 올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박원순 시장은 내리 3선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고, 한국의 정치 지형도 역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자해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결자해지란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인데, 안철수 대표는 그보다 더 절박하고 절실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구약 성경에 보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과 권한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에서라는 인물이 나온다. 안철수 대표는 그때 대권의 꿈이라는 팥죽 한 그릇에 그만 마음이 어두워 1000만 서울시민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정치 흐름을 박원순 후보에게 팔아먹은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출사표에서는 결자해지라는 말은 턱없이 모자라는 말이고, 서울시민에게 석괴대죄(席藁待罪)를 하는 심정으로 출마를 아뢰었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두 번째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과 권한을 또 한 번 팔아치운다. 2012년 안철수 후보는 당시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막판에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야권 단일화의 명분으로 또 한 번 양보를 한다. 당시만해도 안철수 대표는 중도와 젊은 층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무소속으로는 제1야당 문재인 후보에게 역부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2017년 대선을 노리겠다면서 문 후보에게 양보하고 말았다.

그 뒤 안철수 대표는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민주당과 합당해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되기도 하고, 또 자신만의 정당인 국민의당을 만들어 녹색 돌풍을 일으켜 호남 중심으로 38석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2017년 탄핵 정국에서 대선에 출마했는데 2등 홍준표 후보에게도 뒤진 3등을 했고, 2018년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나 2등 김문수 후보에게 되진 3등을 하고 말았다.

정치인 안철수가 보여준 지난 10년 동안의 정치 역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두 번에 걸친 양보와 두 번에 걸친 3등 하기, 다시 말해 그것은 “양보 아니면 3등”이었다. 이것은 그동안 정치인 안철수에게 지지를 보냈던 많은 유권자들에게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니다. 양보 아니면 3등인데, 3등은 꼴등이나 마찬가지다. 뒷심이 없는 사람, 카리스마가 제로인 사람, 선거운동본부의 자원봉사자들한테조차 자기 돈으로 따뜻한 점심 한 끼 사 먹일 줄 모르는 사람, 떠나려는 핵심 측근을 격려하거나 정적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밤새워 폭탄주 통음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비겁한 철수씨’ 이런 이미지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또 하나, 정치인 안철수는 중요한 정치적 변환점마다 주변 스태프들이 대규모로 물갈이 되곤 한다는 점이다. 과거엔 여러 언론들이 이런 제목, 가령 ‘안철수 곁을 떠난 사람들’이란 기획 기사를 수없이 내보내곤 했다. “윤여준도 가고 최장집도 가고 안철수 옆엔 왜?” 혹은 “윤여준 금태섭 최장집 등 ‘굿바이 안철수’ 왜?” 이런 식이다. 안철수 곁을 떠난 사람 중에는 이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무명에 가까운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이제 안철수 대표는 달라졌다고도 한다. 관건은 안철수 대표가 달라진 모습을 얼마나 임팩트 있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유명 논객이었던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기획으로 현장 토크쇼 ‘청춘 콘서트’를 통해 대학가 인기몰이를 하던 정치인 안철수로부터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을까, 유권자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이유는 현실적이다. 대선에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와 야권에서 안철수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로서 인상적인 지지율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난10월 26일~30일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여론조사에서 보듯 현재 야권에서 압도적인 1위는 윤석열 검찰총장(17.2%)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후보들이 2군 그룹을 형성하듯 안철수 대표(4.9%)와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안철수 대표는 정치철학이나 대권의 꿈이나 이런 것들을 떠나서 당장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선택한 아주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에서는 이미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된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 이혜훈·이종구 전 의원, 조은희 서초구청장,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등이다.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서울시장 예비 주자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의원, 그리고 민주당 출신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의 셈법은 매우 복잡해지고 말았다. 지명도로 볼 때 오세훈·나경원 두 사람은 안철수 대표와 경쟁이 가능하다. 이들도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대의명분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어디를 중심으로, 누구를 중심으로 뭉칠 것이냐를 놓고 다툼이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경선 룰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즉 당내 지지율과 서울시민 여론, 양쪽의 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이 문제도 큰 난관이 될 수 있다. 오세훈·나경원 두 잠재 후보의 측근들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당을 안철수에게 통째로 넘길 거냐.” 정치란 그런 것 같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양보 아니면 3등에 머물렀던 ‘정치인 안철수’, 이번에야 말로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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