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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차기 대선 경쟁

[view] "국민 지킬 것"…대선 1년 앞 윤석열, 링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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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자유민주주의·국민 지킬것”

총장직 사퇴…사실상 정치 출사표

야권선 윤석열 ‘내달 창당설’ 거론

재보선 결과 따라 행보 결정할 듯

여권서 ‘선거 1년전 공직사퇴’ 추진

“시간·장소 잘 계산된 출사표인 셈”

“직 걸것” “부패완판” 3일 연속 메시지

일부선 “선거판 뛰어들진 않을 것”

중앙일보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만료를 4개월 앞두고 4일 사의를 표명했다. 윤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으로 출근해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고 한다”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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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임명된 지 588일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직서 제출 1시간15분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발탁했지만 그는 여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떠났다. 두 사람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서로 정치적 대척점으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의 사흘’은 메시지였다. 그는 중앙일보 등 언론 인터뷰(2~3일)에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반발하며 “역사의 후퇴다” “직을 걸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3일에는 대구 고검·지검을 찾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고 대여 비판 수위를 극대화했다. 그런 후 선택한 카드가 사의였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고 밝혔다.


사흘간 행보에서 윤 총장이 보여준 ‘시점·장소·사건’ 3박자는 그의 ‘사퇴=출사표’란 해석의 신빙성을 높여놨다. 윤 총장은 검사가 퇴직 후 1년 동안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 이른바 ‘윤석열 방지법’에 해당되기 5일 전인 4일 사표를 던졌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선 선거 90일 전에 사퇴하면 되지만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1년 전(3월 9일) 사퇴 의무 법안을 발의했는데 윤 총장의 사퇴로 무위가 됐다(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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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취임부터 사의 표명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총장으로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대구를 찾은 것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문재인 정부를 정면 공격했고 거기선 대선 후보 출정식 분위기도 연출됐다. 정치적 의미가 상당하지 않을 수 없다(장소). 거기다 윤 총장의 사퇴 명분은 여권이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중수청 설치의 반대였다. 그는 반문의 상징이 되려 할 수도 있다. 사의 표명 뒤 검찰 전 직원에게 배포한 ‘검찰 가족께 드리는 글’에도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수청 설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다”고 썼다(사건).

윤 총장은 이날 사직의 변 곳곳에 출사표를 연상케 하는 흔적도 남겼다. 그는 이날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했고, 직원들에게 보낸 글엔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이행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그가 ‘정계 진출’이란 표현은 안 썼지만 결국 그의 행보가 대선으로 향해 있다는 걸 의심하는 이는 드문 상황이 됐다.



‘윤석열 방지법’ 5일 전 비켜가고, 전날엔 대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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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로비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꽃다발을 들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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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차기의 시대정신은 법치와 원칙이 될 것”이라며 “그의 대선 시간표가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취임한 윤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등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현 여권과 급격히 멀어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재임기엔 검찰 인사 협의나 주요 사건 수사 지휘에서 배제됐고, 지난해 11월엔 현직 검찰총장으론 처음으로 직무정지·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법원의 집행정지에 따라 직무에 복귀한 뒤엔 여권의 자진사퇴 요구가 빗발쳤지만 버텼다. 그러나 관계 회복을 기대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7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참모진을 교체해 달라는 자신의 의견을 ‘패싱’한 데다 지난달 9일 중수청법이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파 주도로 발의되면서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의 표명 전 주변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검찰에 남아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적폐청산 주도, TK 보수 일부선 반감

야권의 장외 우량주였던 윤 총장이 실제 정치적 행보에 돌입한다면 대선판에도 상당한 구도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다음 달 7일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관심이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정치 행보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윤 총장의 사퇴가 반문 세력의 결집으로 이어져 보궐선거에서 유리한 효과를 거둘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다만 그와 친분이 있는 복수의 인사들은 “‘정치를 하기 위해 직을 던졌다’는 여권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윤 총장이 직접 선거판에 뛰어들 가능성은 작다”며 “대신 중수청 등의 현안에 대한 여권 공세엔 윤 총장이 적극적으로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선 재·보선 막판에 윤 총장이 깜짝 지원 유세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선거 때 표를 끌어모으는 힘을 보여줘야 정치권의 발언권이 커지기 때문이다.

재·보선 이후의 행보도 중요하다. 윤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보다는 ‘강연 정치’로 정치판에 연착륙을 시도하면서 상황을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전통적 보수 지지층 입장에선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한 윤 총장이 아무래도 껄끄럽다. 마찬가지 이유로 윤 총장 역시 국민의힘으로의 입당이 불편할 것”이라며 “재·보선 이후 윤 총장이 중도·보수를 아우르는 정계개편의 키를 쥘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야권에선 윤 총장의 ‘4월 창당설’도 돈다. 윤 총장은 야권 주자 중에선 대선 지지율이 가장 높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지난 1∼3일 조사에선 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올 초 리얼미터 조사에선 30% 넘기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도·보수 아우르는 정계개편 키 쥘 수도”

달변에 마당발이란 평가를 받는 윤 총장은 여러 정치권 인사와 두루 친하다. 윤 총장과 인연이 깊은 대표적인 인사론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 꼽힌다. 두 사람은 초임검사를 대구지검에서 함께 시작한 인연이 있다. 사법연수원 20기인 정 의원이 윤 총장(23기)보다 세 기수 선배다. 반면에 윤 총장은 정 의원의 서울대 법대 5년 선배다. 사석에서 윤 총장은 정 의원을 ‘정공(公)’, 정 의원은 윤 총장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인연이 있다. 안 대표는 지난 1월 유튜브 방송에서 “윤 총장이 (수원지검) 여주지청으로 좌천돼 힘든 시기에 한 번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다”며 “아마 저도 그랬지만, 서로 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도 가깝다고 한다.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는 야권의 여건상 윤 총장 주변으로 유력 인사들이 더 모일 수도 있다. 그가 정치의 문 앞에 섰다.

신용호 정치에디터, 김기정·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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