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인터뷰 40시간 뒤 짧은 성명…"일부 기억 다를 수 있다" 선그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사진=AFP

해리 왕자 부부의 인터뷰 후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여왕은 해리 왕자 부부가 제기한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면서도 "가족(왕실) 내부에서 사적으로 논의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일 오후 5시30분(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제기된 문제들, 특히 인종 관련된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 일부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사안은 매우 심각하게 다뤄질 것이고 가족 내부에서 사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모든 가족들은 해리 왕자와 그의 배우자 메건이 지난 몇년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두 알고 나서 슬퍼했다"며 "가족들은 해리, 메건, 아치를 늘 사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여왕이 '사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 부분을 들어 해리 왕자 부부가 제기한 인종차별 주장에 '선을 그으려'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이날 성명은 해리 왕자와 부인인 메건 마클이 지난 7일 미 CBS방송에서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 의혹 등을 제기해 큰 파장이 일면서 왕실에 대한 비난과 해명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메건 마클은 2019년 5월 출산한 아들 아치와 관련해 "아들이 태어났을 때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 등에 대한 우려와 대화들이 오고 갔기 때문에 왕실이 아치를 왕자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부색에 대한 말을 누가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했다.

인터뷰 방영 이틀만인 9일 오후 나온 엘리자베스 여왕의 성명은 3문장, 61글자로 간략한 분량이었다.

영국 해리 왕자와 배우자 메건 마클 /사진=AFP

여왕의 성명은 인터뷰가 나간 뒤 약 40시간 만에 나왔다.

영국 BBC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인터뷰가 나간 이후 왕실 관계자들이 모여 '위기 회의'(crisis talks)를 갖고, 인터뷰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성명 내용 중 여왕이 "일부 기억은 다를 수 있다"고 한 언급과 관련, 여왕이 해리 왕자 부부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왕가가 해리 왕자 부부의 주장에 모두 사실로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왕의 성명이 누가 인종차별적 언급을 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은 여왕의 성명 내용이 짧지만 수위를 조절하는 데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애나 화이트록 런던대 역사학 교수는 AP통신에 "여왕의 성명은 길지는 않지만 매우 분명한 의도를 담고 있다"며 "가족 문제로 마무리지어 왕가 기관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에서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리 왕자의 전기 작가인 안젤라 레빈은 성명이 늦어진 이유와 관련, 여왕이 군주이자 할머니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고심했음을 나태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빈은 "여왕은 '절대 불평하지 말고, 설명하지도 말라'(Never complain, never explain)는 모토를 수십년간 지켜왔다"며 "하지만 2021년의 분위기는 모든 게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도 너무 많다. 여왕이 말을 안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시영 기자 app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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