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소유 주식에 대한 상속세가 11조366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속인들이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만약 상속인들이 상속세 낼 돈을 미처 확보하지 못하였다면, 부득이 경영권 방어와 직결되는 지분율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고(故) 이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을 주식을 팔아 상속세로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컬렉션'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고(故) 이 회장의 경우 1만 2,000점 상당의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은 물론 국보급 문화재 등 시가 1조원이 넘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들 작품을 상속세로 '물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미술품 '물납', 법적으로 가능한가?
'물납'이란 세금을 돈이 아닌 현물로 납부하는 것인데,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법) 상 납세의무자는 별도의 신청을 통해 조세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물납이 가능하다. 물납을 신청한 재산의 관리, 처분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조세당국이 물납을 허가하지 않을 수도 있을 뿐더러. 현재 물납이 인정되는 것은 상속재산 중 국내에 소재하는 부동산과 국채ㆍ공채ㆍ주권 및 내국법인이 발행한 채권 또는 증권 등의 유가증권으로 한정된다(제73조, 동 시행령 제74조 제1항). 따라서 별도의 법 개정 없이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을 물납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미술품 물납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전성우 전(前) 간송미술관 이사장이 별세를 하면서 상속세에 부담을 느낀 유가족들이 30억 원대의 보물급 불상을 경매시장에 내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해당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자체 예산으로 사들인 덕분에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사비를 털어 구입한 문화재의 해외 유출은 간신히 막았지만, 당시에도 미술품을 물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상증법 개정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국회에서도 상증법을 개정하여 미술품 물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안은 상정되어 있지만, 삼성그룹 상속재원 마련을 위한 '원포인트' 법률안 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상증법 개정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내달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으면, 당장 가산세를 물게 되는 삼성그룹의 입장에서는 마냥 법 개정만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3월 11일 오후 서울 인사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문화재 미술품 물납 도입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광수 한국미협 이사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제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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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속세로 미술품 물납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우선 미학적 요소가 다분하여 주관성이 상당부분 개입할 수밖에 없는 미술품의 감정가를 객관적으로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미술품 물납을 허용할 경우 미술품이 재테크, 상속세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최소 5년 이상 소유한 미술품에 대해서, 일본 역시 국보급 문화재 등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고 있어 우리의 경우에도 미술품이 재산으로 인정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문화재 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미술품 물납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 상속세 문제,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은 아니다.
상속세를 고민해야 할 것은 비단 고(故) 이건희 회장 일가만이 아니다. 그 동안 상속세는 부자들만의 세금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가치의 급등으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납세의무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다가 한 분이 돌아가시면 10억 원, 남은 한 분이 돌아가시면 5억 원을 각 공제 차감하게 되는데, 자산의 70% 이상을 전적으로 부동산에 의존하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경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0억 원에 크게 못 미치는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상속세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 중소형 아파트 평균가격이 이미 9억 원을 초과하였으며 이제 10억 원을 넘어가는 것도 머지않았다는 요즘 현실을 고려하면 누구든 상속세를 고민해야 하고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상속재산인 부동산을 물납해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신 상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부모님으로부터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물려받게 된 자녀는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일 때는 약 9천만 원의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 자녀가 일정한 자산과 수입원을 가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취업을 준비하거나 학생 신분이어서 부모님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아쓰는 입장이었고 설상가상 아파트 이외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전혀 없다면 상속세 9천만 원을 납부하지 못해 그 집에서 쫓겨 나와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근 트렌드는 상속을 '사후' 가족들 간 분쟁에서 '사전' 상속세 설계 쪽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있다. 재무컨설팅을 통해 예상 상속액을 계산한 후 종신보험에 가입해 사망보험금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상속에도 준비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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