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도운 통역관 최소 5명 피살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 “탈레반이 기자 집에 들이닥쳐 가족 사살”
아프가니스탄의 독립기념일인 19일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국기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아프간 곳곳에서는 이런 '국기 시위'가 벌어졌으며 탈레반이 이들을 향해 총을 쏴 여러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은 아프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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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통치에 저항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수도 카불에서는 19일(현지 시각) 약 200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반(反) 탈레반의 상징인 아프간 국기를 흔들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교육·취업·참정의 권리를 요구한다”고 외쳤다. 뉴욕타임스(NYT)는 “카불 시위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위가 계속되는 것은 놀라운 저항의 표시고, 탈레반이 군사적으로는 아프간을 장악했을지 몰라도 지난 20년간 달라진 국민을 장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20일 쿠나르주 주도인 아사다바드에서 시민들 중 한 명이 탈레반 대원을 칼로 찔렀고, 분노한 탈레반 대원들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해 최소 2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시민 저항이 거세지자 카불에서 오후 9시 이후 통행금지령을 발표했다고 현지 매체인 카마통신이 19일 전했다.
보복하지 않고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탈레반의 약속은 깨졌다. 20일 AFP통신은 여성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탈레반이 아프간 국영 TV 여기자인 샤브남 다우란의 출근을 막았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대원들은 집집이 돌아다니며 서방국가에 협력했던 아프간인들을 색출·응징하고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19일 “탈레반 대원들이 우리 소속 기자의 집에 들이닥쳐 그의 가족 한 명을 사살했다”면서 “아프간 현지 라디오 방송국인 팍티아가그의 대표와 독일 매체 디차이트에 기고를 해온 아프간 번역가도 살해당했다”고 했다. DW는 20일 “카불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독일인 남성도 총에 맞아 치료 중”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달 초 가즈니주를 점령한 탈레반이 자신들과 종파가 다른 하자라족 주민 9명을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BBC 방송은 “조만간 탈레반에 의한 대규모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군을 도왔던 아프간 현지 통역관들도 잇따라 피살되고 있다. 국제 법률 지원 단체인 국제난민프로젝트(IRAP)는 18일 최소 5명의 아프간 통역관이 17~18일 탈레반에 살해됐다고 밝혔다. 구호단체인 국제구조위원회(IRC)에 따르면 30만명 이상의 아프간 국민이 미군과 연관돼 있지만, 미국이 특별이민비자(SIV)를 내준 아프간인은 2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 19일까지 SIV 비자를 받은 이 중 단 2000명만 미국으로 이동했다. 미국은 45년 전 베트남 패망 때는 보트피플과 CIA(중앙정보국) 정보원으로 활동한 몽족(族) 등을 적극적으로 미국으로 이주시켰는데, 아프간 조력자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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