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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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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피해 구제'?··· 언론중재법, 누구를 위한 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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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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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2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언론현업단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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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누구를 위한 법이냐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목적도, 대상도, 방향도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언론의 자유 위축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 언론 보도에 대한 제재는 강화하면서도,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혐오표현 대응은 방치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짜뉴스 피해구제한다며 유튜브·SNS는 제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5일 새벽 4시 민주당만 참석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부 문구를 수정했다. 언론의 명백한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다(징벌적 손해배상)는 문구에서 ‘명백한’을 제외했다.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민주당이 ‘명백한’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수정안을 제시했었는데,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도로 뺀 것이다.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이 언론에 있다고 추정하는 요건 중에서는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힌 경우’를 제외했다.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불명확하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이긴 하나, 큰 틀에선 민주당 개정안 그대로 통과됐다. 본회의 의결만 남은 상태다.

민주당은 개정안을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가짜뉴스의 개념부터 불분명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전후로 퍼진 단어인데, 법에서 사용되는 정식 용어도 아니고, 학계에서도 정의가 일관되지 않다. 언론중재법은 언론보도를 대상으로 하지만, 가짜뉴스가 발생하는 곳은 언론만이 아니고 형식도 다양하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정치인까지도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는게 현실이다.

■‘허위·조작보도’ 개념도 모호

개정안으로 인해 언론 자유가 지나치게 침해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무슨 허위·조작 뉴스를 보도하는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냐”고 했다. 하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원 판결이나 학계 논의와는 거리가 있는 인식이다. 허위사실을 말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해악적이라고 취급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 즉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100% 확실한 사실이 아니면 입을 다물라’고 할 순 없다는 취지다. 이 같은 법리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 판결문에도 적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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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최연숙 사무총장이 25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이날 새벽 여당 단독으로 법사위에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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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에서 규제 대상으로 보는 허위·조작 보도의 범위가 모호하고, 권력자에 대한 의혹 제기 보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언론단체들 우려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에서 “허위사실 표현으로 인한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 문제되는 사안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참여를 촉진할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공익을 해하거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면서 “가짜뉴스 퇴출 문제는 집단지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매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고 했다.

■혐오표현 논의는 방치, 언론만 겨냥

민주당은 정작 진보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표현 대응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가 하면, 최근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피해자·유족·단체의 명예훼손을 금지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때는 처벌하는 법 개정안도 낸 상태다.

언론단체들이 국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할 경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혀온 만큼, 본회의 통과가 되더라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한국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는 등 민사적 구제방안이 미흡하다는 점을 이유로 댔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모두 시행되면서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총량만 늘어나게 된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개정안이 저널리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기는 세계 언론자유 순위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42위다.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활동을 하는 국제인권기구 아티클19도 논평을 내고 개정안이 한국의 인권보장 의무와 국제인권기준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아티클19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규제는 국제법에 따라 보호되는 표현에도 징벌을 가할 수 있다”며 “언론의 자기검열을 심화시키고 비판적 보도, 탐사 보도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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