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델가도 멕시코 외무부 차관(왼쪽)과 아프간 로봇팀 소녀들이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멕시코시티|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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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리의 생명 뿐만 아니라 꿈도 구했어요. 탈레반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슬프게 끝나지 않을거에요.”
아프가니스탄을 극적으로 탈출한 아프간 로봇팀 소녀들이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날 카타르 도하를 거쳐 멕시코에 도착한 5명의 로봇팀 팀원 중 4명이 마르타 델가도 멕시코 외무부 차관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명은 신변위협 등의 이유로 기자회견에 함께 하지 못했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로봇팀원 중 한 소녀는 기자회견에서 “탈레반 정권 하에서는 우리 같은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면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델가도 차관은 소녀들에게 “진심으로 집에 왔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환영했다.
‘아프간 드리머’로 알려진 로봇팀은 약 20명의 여성들로 구성됐다. 대부분은 아직 10대다. 아프간 최초로 테크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로야 마흐부브(34)가 아프간 소녀들이 과학기술을 배우길 바라며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로봇팀을 만들었다. 마흐부브는 탈레반 정권 하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아프간 서부 중공업도시인 고향 헤라트에 2003년 처음으로 PC방이 생기면서다. 마흐부브는 여전히 전체 여성 3%만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프간에서 인터넷을 통해 코딩 등 컴퓨터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그는 2010년 아프간 여성 최초로 소프트웨어 업체 ‘아프간 시타델’을 세웠고, 헤라트의 병원과 대학 등에서 정보기술(IT) 지원을 해왔다. 아프간 등 중앙아시아 여성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든 공로로 2013년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아프간 소녀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꿈을 펼치길 원하며 헤라트와 수도 카불 등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로봇팀은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로봇 경진대회에 참석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두 번이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참가가 무산될 뻔하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이들의 입국을 도왔다. ‘아프간 드리머’ 로봇팀은 독일, 멕시코, 에스토니아, 독일 등에서 열린 국제 로봇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자동차 부품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저가 인공호흡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로봇팀 소녀들의 꿈도 짓밟힐 위기에 처했다. 마흐부브는 뉴욕타임스에 “탈레반은 샤리아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허용하기로 약속했다”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인권변호사 킴벌리 모틀리는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에 “아프간 소녀 로봇팀은 세계에 영감을 줬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구할 차례”라고 촉구하면서 해외 각지에서 로봇팀을 탈출시키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학과 우주 정책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앨리슨 르노는 2019년 과학 콘퍼런스에서 ‘아프간 드리머’ 로봇팀을 만난 인연으로 연락을 이어왔다. 이들이 더이상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접한 르노는 직접 카타르 도하로 가 소녀들의 탈출을 도왔다.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예전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로봇팀원들의 비자를 마련하는 등 서류준비를 했고, 10명의 로봇팀 팀원이 아프간을 탈출해 도하로 올 수 있었다. 그중 5명은 멕시코로 오게 됐다. 이들은 멕시코에서 난민 신청을 한 뒤 학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봇팀 학생들은 언젠가 다시 아프간에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로봇팀원 중 한명인 소마야(18)는 지난 17일 정보기술(IT) 분야 비영리 온라인 매체인 ‘레스트 오브 월드’ 인터뷰에서 “할 수 없이 다른 나라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야 하더라도 언젠가는 아프간에 돌아와 다음 세대에게 배운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이애나(16)도 “아프간은 내 조국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도 더 나은 아프간을 건설하고 싶어서”라며 아프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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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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