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인들이 28일(현지시간)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카불 은행 앞에 있는 현금인출기 앞에 줄 서 있다. 카불|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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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새 정부 구성을 예고한 탈레반의 당면 과제는 경제 위기 극복이다. 아프간에서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식료품값은 급등했으며,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 이후 금융 거래도 거의 중단됐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받고 끊긴 지원도 받겠다는 구상이지만, 전문가들은 아프간의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현지 시민들에게 일주일에 최대 2만아프가니(약 23만원)의 현금 인출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공중보건부와 교육부, 중앙은행 등을 포함한 핵심 정부 기관을 운영할 관리들이 이미 임명됐다”며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난도 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42.9%가 국제사회의 원조에서 나왔을 만큼 빈곤한 나라인 아프간은 탈레반 점령 이후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카불 함락 전날인 지난 14일 달러당 80.84아프가니에 거래되던 아프간 통화는 2주 만인 28일 달러당 86.13아프가니에 거래됐다. 도이체벨레는 밀가루, 쌀, 기름 등 생필품 가격이 며칠 만에 10~20% 급등했다고 전했다.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근처에서는 생수 한병의 가격이 40달러(약 4만6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 운영이 중단됐다가 열흘 만인 지난 25일 재개된 이후 현금인출기 앞에는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테러 관련 연구기관인 ‘극단주의 대항 계획(CEP)’의 한스-야콥 쉰들러 연구원은 “몇주 혹은 몇달 이내 아프간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사회의 제재와 원조 중단으로 인해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간의 자금줄은 꽉 막혀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지난 18일 아프간에 보내기로 한 4억5000만 달러(약 5261억4000만원) 상당의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보류했다. 세계은행(WB)도 아프간에서 진행 중인 수십건의 개발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아프간 정부의 약 90억달러(약 10조5000억원) 자금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국제결제은행(BIS), 세계은행 등에 묶여 있다.
아프간의 주요 해외 송금업체 웨스턴 유니온과 머니그램 인터내셔널도 미국 제재법 위반을 우려해 아프간 송금 서비스를 중단했다. 해외 송금은 아프간의 주요 외화 확보 수단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아프간 국내총생산(GDP) 4%인 7억8900만달러가 해외에 사는 친척 등으로부터 송금된 것으로 집계했다.
그간 탈레반은 불법 마약 거래, 불법 광산 개발, 점령 지역에서의 통행료 편취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남겼지만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부족하다.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인 양귀비 최대 생산국 아프간에서 탈레반은 연 1억~4억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탈레반은 남부 헬만드 지역을 장악해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의 광물 수익을 얻어냈으며, 자신들이 점령하는 지역을 통과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라고 요구해왔다. BBC는 2018년 탈레반이 이러한 방식으로 연 15억달러를 벌여들였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아즈말 아마디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도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반군을 운영할 때 많아 보이지 정부를 운영하기에는 부족한 수입이란 것이다. 게다가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양귀비 재배 금지령을 내리는 등 수입원도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경제적 압박은 탈레반이 보다 포괄적이고 온건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마르 자킬왈 전 아프간 재무장관은 “탈레반이 경제 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정치세력과 권력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은 그나마 아프간 경제의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왕위(王愚) 아프간 주재 중국대사는 28일 중국 국제텔레비전(CGTN)과의 인터뷰에서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아프간 각 측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중국·아프간 우호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간에는 구리, 금, 석유, 희토류 등 풍부한 자원이 매장돼 있다. 러시아도 대사를 아프간에 남겨두고 탈레반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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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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