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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사재기와 매점매석

명품만 '리셀'? 값싼 유니클로도 사재기..."2배에 되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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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커져가는 리셀시장①]

나이키 한정판 신발에서 시작된 리셀(재판매)이 중저가 의류·생활용품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반짝 세일할 때 대량 구매한 뒤 웃돈을 붙여 중고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다.

중고거래 앱을 통해 개인들도 쉽게 물건을 팔 수 있게 되면서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견디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일부 리셀러들의 사재기로 정작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구매를 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에서는 "우리가 리셀의 민족이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유니클로X르메르, 당일 완판 후 리셀시장서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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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르메르와 협엽한 유니크로 U 2022년 SS시즌/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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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유니클로가 신명품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르메르와 손잡고 출시한 봄 컬렉션은 판매 당일부터 리셀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르메르의 창업자인 크리스토퍼 르메르는 에르메스와 라코스테의 여성복 디렉터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뒤 자신만의 브랜드를 신명품 반열에 올렸다. 르메르의 티셔츠 한벌 가격은 약 30만원. 시그니처 제품인 크로와상백의 경우 168만~248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반면 유니클로에서 출시한 르메르 콜라보 여성용 봄 코트는 셔츠코트가 7만9900원, 나일론 코트가 12만9000원이었다. 유니클로 U 르메르 반팔 티셔츠의 경우 1만2900원, 1만9900원, 드로우스트링 숄더백은 3만9900원이었다.

자릿수가 다른 가격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출시 당일 드로우스트링 숄더백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품이 '완판'됐다. 그러나 당일 오후부터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두배 가격으로 리셀 제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욕제 브랜드인 러쉬도 지난 7일부터 반값 세일에 돌입하자 구매자들이 몰렸다. 러시는 매년 1년에 한번씩 50% 세일을 한다. 온라인은 세일 시작과 동시에 많은 품목들이 빠르게 매진됐고, 매장 역시 구매를 위해 1시간 이상 긴 줄을 서야 했다.

러쉬 역시 당일 오후부터 중고거래 시장에 판매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50% 세일 가격에 커피값 정도의 웃돈을 붙여 반값보다는 비싸지만 정가보다는 싸게 사려는 수요를 노린 것이다. 러쉬의 배쓰밤은 개당 1만4000원, 버블바는 1만9000원, 컨디셔너는 3만6000원 수준이다.

러쉬 구매자 A씨는 "100만원어치를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며 "세일은 유통기한이 1년 미만으로 남은 제품이 중심인데 개인 사용이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워보였다"고 말했다.

'일단 사고 보자'는 전략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유니클로가 독일 명품 디자이너 질 샌더와 협업해 출시한 +J 컬렉션도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품절된 뒤 리셀 시장에서 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지만, 글로벌 재고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유니클로 공식 매장에서 일부 상품은 '할인 상품'으로 팔리기도 했다.


손쉬워진 '되팔기'...전문판매자 가리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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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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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명품 뿐 아니라 중저가 제품까지 리셀시장이 커진 것은 누구든 쉽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중고 거래 플랫폼이 커진 덕분이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중고시장 규모는 20조원으로 2008년 대비 약 5배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중고거래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했다. 현행법상 사업자는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시 부가가치세 10%와 종합소득세 과세표준에 따라 6~45%를 세금을 내야한다.

그러나 판매자가 사업성이 없는 개인인지, 전문 판매자인지 가리기는 쉽지 않다. 세금을 내는 기준도 구체적인 횟수나 금액의 기준이 없이 '반복적인 영리 추구'로 애매모호하다.

김대지 국세청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중고거래 플랫폼이 사실상 불법적인 탈세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구체적 과세기준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발표된 바는 없다.

중고거래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자 대기업까지 가세하고 있다.

국내 스니커즈 리셀 거래 1위인 크림은 2020년 네이버가 자회사 스노우를 통해 출범한 플랫폼이다. 크림은 지난해 100만명의 스니커즈 매니아가 가입돼 있는 네이버카페 '나이키매니아'를 8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3월 중고나라 지분 93.9%를 인수한 사모펀드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중고나라는 당근마켓, 번개장터와 함께 우리나라 중고시장을 삼분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번개장터'에 820억원을 투자했다. 번개장터의 지난해 거래액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나이키 한정판' 진열한 오프라인 중고거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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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ZT LAB 2호점/번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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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번개장터는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편집숍까지 늘리고 있다. 1호점인 '브그즈트 랩(BGZT LAB)'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이다. 한정판 나이키 신발을 실물로 보려면 '백화점에 입점한 나이키 정식 매장'이 아닌 '백화점 지하 중고거래 매장'에 방문해 웃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번개장터 오프라인 편집숍은 3호점까지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일반인이 몇천만원짜리 한정판 스니커즈를 실물로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냐"며 "브그즈트 랩은 판매자체를 늘리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인지도와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고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백화점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고가품 뿐 아니라 중저가 제품에 대한 리셀이 늘어나자 이에 대한 원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작 물품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정식 구매처를 통해 사지 못하고 판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리셀시장을 이용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당근마켓은 전문 판매업자로 의심되는 경우 이용자들이 직접 신고할 수 있지만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은 전문 판매업자의 참여 자체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번개장터 측은 "통신판매업자의 경우 사업자등록증 및 통신판매업신고 번호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면서도 "번개장터는 개인 간의 거래 플랫폼으로 사업자 등록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거래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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