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성향 분리주의 반군 장악지역인 도네츠쿠주 주민들이 군부의 대피령에 따라 19일(현지시간) 피난 버스에 탄 채 러시아 로스토프의 세관초소에서 러시아 입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스토프|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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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 반군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간스크주(돈바스) 지역에서 정전협정(민스크협정) 위반 사례가 연일 올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반군이 주민 대피령과 군동원령을 내리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가 이 지역 무력충돌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정부에 돌리며 침공 구실로 삼으려는 이른바 ‘가짜 깃발 작전’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설 경우 혹독한 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며 거듭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전력 훈련을 직접 참관하며 무력 시위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19일(현지시간) 약 2000건의 민스크협정 위반 사례가 보고됐다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OSCE는 전날에만 도네츠크에서 591건, 루간스크에서 975건 등 총 1566건의 정전협정 위반 사례가 발견돼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전협정 위반 사례는 지난주 대비 최소 2~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교전으로 우크라이나 정부 관할지역에서 민간인 1명이 숨지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에서도 사망자가 2명 발생했다. 20일에는 루간스크주에서 민간인 2명이 정부군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이 반군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쏜 2발의 포가 우크라이나 접경에서 약 1㎞ 떨어진 자국 영토 로스토프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도네츠크주 반군은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군 스파이를 붙잡았다면서 돈바스를 무력 점령할 목적으로 이 지역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을 숙청하는 일명 ‘5일작전’을 사전에 저지했다고 주장했다. 스파이로 지목된 남성은 러시아 국영방송 채널1과의인터뷰에서 전날 반군 지도부 수송차량 폭발에 가담했으며 돈바스 지역으로 무기와 폭발물들을 몰래 들여왔다고 말했다. 돈바스 반군세력은 전날 지역 주요 가스관과 주유소가 폭발로 파괴됐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사보타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돈바스 지역 반군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며 전날 여성과 아동들에게 러시아로 대피령을 내린 데 이어 이날은 군동원령을 내렸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로스토프주로 약 4만명의 돈바스 지역 난민들을 받아들였다고 20일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만들려는 친러 반군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친러 반군의 도발에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헬가 슈미트 OSCE 사무총장과 즈비그니에프 라우 폴란드 외무장관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곧 군사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있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최근 들어 더 적대적이고 선동적인 언사는 평화와 안정, 안보를 심으려는 노력을 저해하고 대립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위해 이날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미국과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러시아를 향해 강력한 제재를 경고하면서 대화에 나서라고 압박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은 우리의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크고 전례 없는 경제적 대가를 부과할 것”이라면서 경제 제재는 러시아의 금융 기관과 핵심 산업을 겨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이날 회의 뒤 낸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속한 병력감축을 이행하라고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 상황실에서 우크라이나 북부 접경국인 벨라루스의 알렌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함께 핵전력 훈련 등을 포함한 양국 합동군사훈련을 지켜봤다. 크렘린궁은 공중우주군이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포함해 여러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무력을 과시해 서방에 우크라이나 위기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AFP통신에 따르면, 벨라루스 국방부는 20일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접경의 긴장이 고조됐다면서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이날 끝내기로 했던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파견한 병력이 훈련을 마치면 기지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되면 서방의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러시아에 당장 제재를 가하라고 서방 국가들을 압박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 정부 인사들이 연일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데 대해 외국인 투자와 우크라이나 환율을 불안하게 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만남을 제안했으나 러시아 측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외교적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면서 외교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러시아위원회를 통해 러시아에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 나선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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