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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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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영언론 동원해 “우크라가 공격”... 가짜뉴스로 여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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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영상 유포하며 우크라이나의 선제 도발 주장

조선일보

지난 20일(현지 시각) 러시아 로스토프주(州)의 항구도시 타간로크의 스포츠센터에 마련된 피란민 임시수용시설에서 어린이 세 명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살다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대피했다/타스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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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선제 도발 증거라며 유포한 영상이 사전에 기획·촬영됐다고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 매체들이 지난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러시아가 영상을 조작한 뒤 관영 언론을 동원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폭발물을 잘 다루는 러시아 요원들을 우크라이나에 침투시켜 ‘가짜 깃발 작전’(자작극)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친러 반군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민병대는 지난 18일 홍보용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가 DPR 관할 도시 호를리프카의 염소 저장 시설을 폭파해 화학전을 벌이려 했다”며 숲속에서 총성이 들리고 총포탄처럼 불빛이 쏟아지는 영상을 공개했다.

DPR은 우크라이나군을 돕다가 숨진 폴란드 용병의 몸에 부착된 액션캠(초소형 카메라)에서 이 영상이 발견된 것처럼 발표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국영방송 RT 등은 이런 주장들을 근거로 “DPR 민병대가 우크라이나의 파괴 공작 시도를 저지했다”고 보도했다. 그 후 몇 시간 만에 DPR 지도자인 데니스 푸실린은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오늘 그들(우크라이나)의 총은 시민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겨냥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친러 세력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 지도자인 레오니드 파세츠니크도 “민간인 사상을 방지하기 위해”라며 주민 대피를 촉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기반의 탐사 보도 매체 ‘벨링캣’은 텔레그램 서버에 남은 메타데이터(속성 정보)를 분석,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이라고 전했다. DPR 민병대가 지난 18일 우크라이나의 폭파 시도라며 공개한 영상의 메타데이터를 보면 영상 생성 일자가 2월 8일이었다. 이 영상을 담은 프로젝트 폴더는 2월 4일에 만들어졌다. 즉, DPR이 주장한 사건 발생 시점 열흘 전에 이미 영상이 촬영돼 있었다는 것이다.

영상에 다른 음향을 덧입혀 편집한 것 같은 흔적도 나왔다. 메타데이터 속의 한 파일은 지난 2010년 핀란드군의 사격 훈련 장면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됐다. DPR 측이 공개한 것과 비슷한 총성이 담긴 영상이었다. 또 미국 매체 ‘데일리 비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지난달 이미 “호를리프카에 저장된 화학물질들이 가짜 깃발 작전에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CNN은 DPR과 LPR이 18일 공개한 대피령 발표 영상의 메타데이터를 확인, 두 영상의 생성 일자가 모두 2월 16일이라고 보도했다. DPR 지도자 푸실린은 “우크라이나의 도발을 이유로 대피령을 내린다”며 “오늘 2월 18일”이라고 말했지만 영상은 그 전에 이미 촬영돼 있었다는 뜻이다. CNN은 “텔레그램이 보관하고 있는 메타데이터는 변경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20일 “이달 초부터 러시아가 퍼트린 거짓 정보만 40종이고, 지난주엔 허위 정보의 양이 두 배로 증가했다”며 세계에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고 허위 정보에 반박하는 역할을 할 ‘러시아-우크라 정부정보국(GIC)’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유형의 부대가 운영되는 것은 냉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언론감독위원회(ZAK)도 지난 2일 러시아의 국영 보도 전문 채널 RT의 독일어 방송이 독일 내에 편성·중계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 등은 크렘린궁이 러시아군 사령관들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신뢰도 높은 정보를 지난주 미 정보 당국이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수도 키예프 외에 북동부 하르키우, 남부의 오데사와 헤르손 등으로도 진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反戰)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전면적으로 확산할 경우, 러시아도 막대한 인명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 경제가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0일 우크라이나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 13일 대규모 반전 시위가 열렸다. 시민 1000여 명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함께 흔들며 “두 나라가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 “양국 정상이 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유명인 150명이 인터넷에 ‘전쟁 반대’ 공개 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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