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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치킨 팔아 뭐하나, 배달대행사에 수수료로 다 뜯겨"…자영업자들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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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대치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 모씨(62)는 비가 올 때마다 한숨을 쉰다. 최근 들어 주문 대부분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들어오는데 비가 오는 순간 곧바로 수수료가 건당 550원 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가 오는데 해까지 떨어지면 수수료를 건당 1100원 더 내야 한다.

그렇다고 김씨는 고객들에게 배달비를 전가하려니 주문이 급감할 게 걱정돼 선뜻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김씨는 "기본요금과 가맹비까지 합칠 경우 많으면 건당 1만원을 내야 한다"며 "대행업체가 각종 할증을 붙이면 손님이 지불하는 배달비를 올리거나 손해를 보면서 장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배달대행업체가 고액 수수료를 업주들에게 강요하면서 배달비가 상승하고 있다. 나쁜 날씨나 야간 주문 등 각종 할증이 더해져 건당 수수료로 1만원을 넘게 내야 할 때도 있다. 최근 들어 생활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던 '고액 배달료' 이면에 배달대행업체의 횡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복수의 배달대행업체에 따르면 음식점 업주들이 부릉, 생각대로, 바로고 등 배달대행사에 지급해야 하는 할증 종류만 여섯 가지가 넘는다. 배달대행사는 기상·거리·심야·계절 할증은 물론이고 지역 할증이나 과적 할증까지 음식점에 부과한다.

식당 입장에서는 배달비를 올리지 않으면 각종 할증으로 이윤이 남지 않으니 소비자가 부담하는 배달비를 올리거나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배달비를 과도하게 올리면 경쟁 식당에 뒤처질까 봐 손해를 보면서 영업을 하고 있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대행사 할증료를 향한 불만 글이 가득하다. 커뮤니티에 '할증'을 검색하자 "한파특보도 없는데 한파 할증을 걸어서 1.5㎞도 안 되는 배달에 각종 할증으로 7500원을 받아간다" "대행사에서 말도 없이 예치금에서 과적 할증료를 몰래 빼갔다"는 등의 비판 글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배달대행업체들이 각종 명목으로 부과하는 수수료는 상상 이상이다. 서울 역삼1동 배달대행업체 A사에 따르면 업주는 배달대행업체에 기본 가맹비로 건당 550원과 기본요금 4950원을 낸다. 업주들은 주문 하나에만 5500원을 대행업체에 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고객들이 내는 배달비가 건당 4000~5000원 수준이기 때문에 큰 손해는 없다.

문제는 배달대행업체들이 막상 주문을 받고 배달하는 과정에서 각종 할증 수수료를 챙긴다는 것이다. 만약 고객이 비 오는 밤에 3㎞ 떨어진 역삼1동 상점으로 음식을 주문했을 때 A사는 업주에게 9350원을 수수료로 청구한다. 심지어 식당이 코엑스와 같이 진입이 어려운 곳에 있으면 '진입 동선 할증 1100원'까지 더해져 업주는 건당 1만450원을 배달 수수료로 내야 한다. 반면 배달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배달 앱 측에서 직접 배달하는 배민1은 같은 사례에서 배달 수수료 총액이 6000원에 불과하다. 배달 앱이 직접 배달하는 쿠팡이츠와 배민1 모두 지정된 배달비나 수수료 외에 별도의 할증을 업주에게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주들 입장에서는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면 4450원을 손해 보고라도 배달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이 모씨(45)는 "대행사와 비싼 배달비를 두고 다투다 지난 2월 10일 결국 계약을 종료하고 배달 앱의 자체 배달을 이용하거나 새로 산 오토바이로 직접 배달을 한다"며 "주변에서도 다들 속속 배달대행업체를 이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배달대행업체는 최근 배달기사가 부족해 사람을 구하려면 높은 배달 수수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쿠팡이츠나 배민1이 각종 프로모션으로 배달기사를 다 쓸어가니 우리 입장에서는 할증이라도 받아서 배달기사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며 "대형 배달 앱의 자본을 따라갈 수 없으니 고육지책으로 꺼낸 대책"이라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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