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 132조…연체 아닌 정상여신으로 분류돼
전체 대출잔액 1년새 110조 증가…지원 끝나면 부실 한번에 터질수도
4차 연장안 이달 하순 발표 예정
전북 전주의 대학가에서 술집 3곳을 운영하던 A 씨(30)는 2곳을 폐업하고 1곳은 월세 50만 원을 내면서 휴업 중이다. 1곳마저 폐업하면 개인사업자 등록이 말소돼 소상공인 대출 1억 원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하루 15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방역 조치가 강화되고 대학이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면서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는 “대출 때문에 폐업은 못 하겠고 이자라도 갚기 위해 일용직을 뛰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빚에 기대 버티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출 만기 연장 등 코로나19 금융 지원책이 계속 연장되면서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오히려 사상 최저로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원 조치가 끝나면 숨어 있던 부실이 한번에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은행들 “숨은 부실 관리 어려워”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16%다. 연말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4년 이후 가장 낮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2019년 0.29%에서 2020년 0.21% 등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자영업자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도 대출 연체율이 떨어진 것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만기가 연장되거나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 잔액은 132조1000억 원에 이른다. 이 대출은 연체가 발생하지 않아 정상 여신으로 분류된다.
자영업자들이 대출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것을 피하려고 폐업 대신 휴업을 선택하는 것도 연체율로 잡히지 않는다. 은행권 관계자는 “겉으로는 정상 대출이지만 영업 상황을 감안하면 숨어 있는 부실에 해당한다”며 “폐업을 하면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해 폐업도, 취직도 못 하는 자영업자가 꽤 많다”고 했다.
은행들은 이 같은 숨은 부실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율로 건전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각 지점에서 개인사업자의 상황을 사실상 수기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 “대출 연체율은 한번에 뛰어”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87조6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4.2%(110조2000억 원) 급증했다. 대출 금리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식당을 하는 B 씨(64)는 2년 전 은행에서 받은 소상공인 지원 대출 7000만 원의 이자율이 연 2.55%에서 최근 3.01%로 뛰었다.
최근 금융당국이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를 9월 말까지 네 번째 연장하기로 하면서 향후 지원이 종료되면 숨은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국은 4차 연장의 세부 실행 계획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된 뒤 이달 하순 발표할 방침이다.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2020년 시행된 ‘소상공인 2차 금융 지원’ 위탁보증액의 부실률은 지난해 6월 말 1.3%에서 올해 2월 말 2.22%로 올랐다. 5월 본격적인 상환이 시작되면 5.1%로 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연체율은 낮은 상태를 장기간 유지하다가 위기 시점이 닥치면 한번에 솟구치는 경향을 보인다”며 “그때 가서 대응하면 늦다”고 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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