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11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4회 공연에 총 20만명이 몰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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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으로서 시기가 된다면, 나라의 부름에 언제든지 응하겠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2013년 데뷔 이후 줄곧 군대에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정치권에서 이들의 병역특례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도 같은 견해를 드러냈다. 지금도 그렇다.
BTS 멤버 슈가(민윤기·29)가 2020년 6월 발표한 ‘어떻게 생각해’라는 곡에는 “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들 갈 테니까 우리 이름 팔아먹으면서 숟가락 얹으려고 한 X끼들 싸그리 다 닥치길”이라는 가사가 담겼다. BTS 팬덤인 ‘아미(ARMY)’ 내에서도 “군대 가겠다고 했으니 가만히 놔두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최근 BTS의 병역특례 문제가 다시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찬반이 팽팽하다. 양쪽 모두 ‘공정’과 ‘형평성’을 내세운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은 ‘뜨거운 감자’다. BTS의 소속사인 HYBE(하이브) 측은 국회를 향해 병역특례 여부를 조속히 결론내달라고 촉구했다. 불확실성을 없애달라는 취지다. 정부 내에서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당장 사안을 매듭짓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참에 병역특례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BTS는 국위선양 못 했나
국회에는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도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 3건이 발의돼 있다. 윤상현·성일종 국민의힘 의원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10월에 내놓은 법안들이다.
병역특례는 예술·체육인이 경력 단절 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제도다.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면 약 4주간 기초군사훈련만 받는다. 사회로 복귀해 34개월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사회공헌활동 544시간을 이수하면 된다.
BTS의 병역특례 논란은 예술·체육요원의 기본 요건에서 비롯됐다. 병역법에 명시된 자격은 ‘국위선양(나라의 권위나 위세를 널리 떨치게 함)’과 ‘문화창달’이다. 여기에 체육요원은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따야 자격이 된다. 예술요원은 병무청에서 선정한 음악·무용·국악 콩쿠르 등 국내외 42개 대회에서 1~2위를 수상해야 한다. 순수예술 분야로 한정됐다.
대중문화예술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BTS가 다른 어떤 예술인보다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에 기여했는데 왜 병역특례를 받지 못하느냐”는 논리다. BTS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18년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이다. 2020년 9월에는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한국인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그해 11월에는 미국 3대 음악시상식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를 수상하는 등 3관왕을 차지했다.
BTS가 유발하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도 병역특례 찬성의 근거로 제시된다. 올 4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기의 BTS 국내 콘서트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보도자료에서 “BTS가 국내에서 콘서트를 정상 개최하면 공연 1회당 경제적 파급효과는 6197억~1조2207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연간 10회 공연을 하면 12조2068억원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 내에서는 문체부가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BTS에 특례 주면 빗장 풀려
국방부는 그러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이다. 군 복무의 형평성, 인구절벽으로 인한 병역자원 확보 문제 등을 주된 이유로 든다. BTS에 병역특례를 적용하면 다른 대중문화예술인으로 걷잡을 수 없이 특례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특례 대상을 단계적으로 축소해간다는 국방부의 기본 방향과도 어긋난다.
제도를 손대봐야 논란만 더 커질 것이란 인식도 깔려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자격 기준만 보면 BTS가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건 맞다”면서도 “BTS를 허용하면 특례자가 우후죽순 늘어날 것이고, 대중문화예술 내에서도 어느 분야는 되고, 안 되고 등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대중문화예술은 올림픽이나 콩쿠르 등처럼 공신력과 대표성 있는 지표가 없어 객관적인 편입 기준 설정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조문상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은 지난해 8월 검토보고서에서 “개인 영리활동과 직결될 뿐 아니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어 특기를 활용한 공익적인 업무에 복무하도록 하는 이 제도에 다소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BTS가 지난해 병역연기 기한을 만 30세로 연장하는 혜택을 받은 점도 반대 근거로 꼽힌다. 병역특례까지 주면 과도한 혜택이라는 여론이 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국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일반 시민들로부터 BTS의 병역특례에 반대하는 전화도 많이 걸려온다”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LA’ 둘째날 공연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빅히트 뮤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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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언제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지난 4월 2일 하이브를 방문키로 하면서 BTS의 병역특례 문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안 위원장은 그러나 방문 후 취재진에 “병역특례 문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이후 이진형 하이브 커뮤니케이션 총괄의 발언이 병역특례 문제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BTS가 군대에 가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병역 논의가 이번 국회에서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확실성 때문에 향후 활동 계획 수립에 제약이 있으니 조속히 결론을 내달라는 취지다. 멤버 중 맏형인 진(김석진·30)은 당장 내년이면 입대해야 한다. BTS 병역특례에 찬성하는 국민의힘 정책위원장 성일종 의원이 이틀 뒤 라디오에 출연해 “4월 중에는 병역법 개정안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마무리할 생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에 파란불이 켜진 듯하면서 논란도 한층 달아올랐다.
현재 논의 상황을 보면 그러나 이른 시일 내 결론이 나기는 힘들다. 법안심사소위나 공청회 등 일정도 아직 잡힌 게 없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의원들 간 입장도 갈려 앞으로도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방위는 지난해 11월 한차례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법안을 두고 토론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향후 공청회나 간담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소위에 참석한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논의의 장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현재까지 국회나 국방부·병무청, 문체부 등에서 공청회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국방부와 문체부가 실무급에서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 여부와 대체복무 형태 등을 논의해왔지만,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양측 실무선에서는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라며 “최고위급 등에서 결단을 내리지 않는 이상 진척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안의 키를 쥐고 있는 국방부는 공청회 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인데다 2019년 병역특례 제도 개선을 위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에서도 이미 대중문화예술 분야로 병역특례를 확대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전반적인 대체복무 감축 기조,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형평성을 제고하려는 정부의 기본 입장과 맞지 않아 검토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 문체부 등에서 나서서 공청회를 연다면 국방부가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국방부가 앞장서서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라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관련기사: 최광호 음콘협 사무총장 “BTS도 자격 충분…병역특례 허용해야”
■“시대에 안 맞는 제도 폐지해야”
병역특례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제도 자체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 제도는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북한보다 뒤떨어진 성적을 낸 걸 계기로 추진됐다는 게 정설이다. 예술·체육인의 활동을 보장해 한국을 널리 알리는 등 ‘국익’에 기여하라는 취지라고 보면 된다. 1973년 제도 시행 초반에는 심지어 ‘한국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도 특례 대상으로 쳤다. 지금은 국위선양이라는 인식이 많이 약해졌다. 특혜라는 쪽으로 좀더 무게중심이 기울어가는 분위기다. 끊이질 않는 형평성 논란도 폐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4선의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병역특례 제도가 생길 때는 병역자원이 넘쳐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던 시절이었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였다”라며 “현재와는 많이 동떨어진 전근대적 제도”라고 말했다. 이어 “20대 초반 장정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도 생각해야 한다”라면서 “공정하지 못한 병역특례 제도를 축소 내지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을 비롯한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그간 제도의 폐지를 여러차례 주장해왔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병역특례 제도를 유지할 거라면 순수예술과 체육인은 포함하고 대중문화예술은 배제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모든 국민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차원으로 접근할 거라면 제도 자체를 없애야 불공평한 지점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하태경 의원 “병역특례는 불공정 혜택, 제도 폐지해야”
병역특례를 받은 축구 선수 손흥민씨가 2020년 5월 8일 오전 제주 서귀포 해병대 9여단 훈련소에서 열린 기초군사훈련 수료식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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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
특례 대상은 시대 상황에 따라 종종 변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이 16강에 오르자 정부는 ‘월드컵 16강’을 병역특례 조건으로 신설했다. 대표팀 주장이던 홍명보 선수는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뒤 김대중 대통령의 격려 자리에서 병역문제 해결을 건의했다. 정부는 사흘 뒤 병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혜택을 줬다. 이처럼 시행령 개정은 정부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2006년에는 첫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이 4강에 오르자 특례를 추가했다. 비인기 종목과의 형평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월드컵 16강과 WBC 4강은 2008년 특례 대상에서 다시 제외했다. 예술 분야도 2008년에는 편입을 인정한 대회가 148개에 달했으나 점차 축소돼 지금은 42개이다.
지난해 11월 병역법 개정안 논의를 위한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가 가능하다는 점이 거론됐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시행령 등을 고치면 얼마든지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다”라면서 “BTS처럼 국위선양이 분명한 사람을 안 된다고 하니까 답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한지 여부를 묻자 조복연 병무청 차장은 “가능하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성 의원은 “여러분(국방부와 병무청)은 책임 안 지고 국회가 다 해주면 그냥 그것 그대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분은 하나도 욕먹기 싫다, 국회의원들 욕먹어라(인가)”라며 “지금 법체계에서 가능하다고 얘기하면서도 국민 여론이 무서워 어떻게 비난받을지 모르니까 그것을 못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국방부 입장은 추가적인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저희가 그것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 국회로 미뤘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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