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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19대 대통령,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더 잘 알게된 지난 일주일 [노원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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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JTBC 전 앵커 손석희씨의 대담 프로그램을 시청한 지인 한명이 "괜히 봤다"고 툴툴거렸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대통령의 인격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있었어요. 586에 둘러싸인 순수한 대통령이 뭘 몰라서 저러겠거니 했지요. 방송을 보니 모든게 다 대통령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말문이 터진 것처럼 보인다. 손석희 대담에서, 출입기자단 회식에서, 국민청원 답변에서, 군 관계자 격려 오찬에서, 방역 관계자 오찬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 말들은 '배설'같다. 섭섭함과 분노, 불만을 여과없이 뱉어내느라 말에 독이 묻어있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말이 험하다는 것외에 '어?'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되는 대목이 있다.

지난 5년간 대통령의 지적 능력을 놓고 이런저런 풍설이 돌았다. 'A4 대통령'이 대표적인데 취임전 약속과 달리 가뭄에 콩나듯 기자회견을 한 이유가 대통령의 '밑천'이 드러날까 걱정해서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1년에 한두번 있는 회견에서도 대통령은 평균적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얘기를 할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서울 아파트값이 두배로 뛴 국면에서 '부동산이 안정을 찾았다'거나,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은 상황에서 '일자리가 늘었다'거나···.

실은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하는 모든 말이 어느 정도는 그런 현실 괴리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복기할 이유는 없다. 그때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 성적표 얘기니까 저렇게 말하고 싶겠지'하고 넘어갔다.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한다고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문제삼기 시작하면 세상에 바보가 아닌 대통령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은 A4에 적힌, 비서진이 적어준 통계에 기반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바보는 대통령보다는 비서진일 가능성이 더 높다.

요사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이 더 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코로나 방역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점심을 하면서 "K-방역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성공 모델로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주장한 것이나, 군 관계자들과 오찬에서 "우리 정부 5년 동안 단 한건도 북한과 군사적 충돌이 없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 것을 문제삼지는 말았으면 한다. 한도 끝도, 보람도 없는 일이다.

내가 '어?'하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비판한 대목에서다. 문 대통령은 손석희씨 대담에서 "집무실을 옮기는 것은 국가의 백년대계인데 어디가 적절한지 등을 두고 여론 수렴도 해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담이 방송된 것은 4월26일이었지만 진행된 것은 15일이었다. 나는 청와대가 곤혹스럽겠구나 생각했다.

4월15일과 26일 사이 '검수완박'은 사정이 더 악화돼 더불어민주당의 강행처리 외에는 수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백년대계'와 '여론수렴'을 말하는 방송이 나갔으니 대통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나 면구스럽겠는가 말이다. 아니나다를까 방송이 나가자마자 검찰쪽에선 '그럼 검수완박은요?'하는 반응이 나왔다. 자가당착이 제대로 걸린 경우다.

놀라운 것은 29일 '문재인 정부 국민청원'의 마지막 답변자로 나선 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말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 없이 밀어붙이면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이라고 느껴진다." 국민청원 답변 녹화가 진행된 것은 4월26일이라고 한다. 11일전 손석희 대담때와 똑같은 논리에, '백년대계' 표현도 그대로다.

손석희 대담과 국민청원 녹화간 11일 사이에 거의 모든 언론, 학계, 법조계가 "검찰수사권같은 중요한 문제를 공청회 한번 없이 강행하는 것은 폭거"라는 주장을 매일같이, 매 시간마다 쏟아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저렇게 태연자약, 진지한 표정으로 '백년대계'와 '소통'을 말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부조리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통령에게 부족한 것은 인지능력일까, 공감능력일까.

생각해보라. 현재 불륜을 즐기는 남자가 있다고 있자. 집에서 아내와 TV를 보는데 하필 소재가 바람피는 남자다. 이런 경우에 남자들은 '한국 드라마는 이렇게밖에 못만드나' 하면서 채널을 돌릴 것이다. 좀더 고약한 경우로는 아내가 '혹시 당신도?'하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남자는 '헛소리좀 그만'하며 물을 마시러 나갈 것이다. 이건 매우 정상이다. 그런데 아무 거리낌없이 '와 정말 나쁜 놈이네' 같은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드라마에 몰입하는 남자가 있다. 그건 비정상이다. 나는 집무실 이전과 검수완박을 대하는 문 대통령이 이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분리적 사고에 능하다. 그러니까 검수완박과 집무실 이전의 소통 부족을 따로 떼어낸뒤 한쪽에선 의분을 느끼고 한쪽에선 문제의식을 못느끼는 사고 말이다. 그건 극히 편의적인 사고방식이거나 종합적 사고 능력의 결여일수 있다. 어느쪽이든 위험하다. 그런 지도자를 둔 나라는 위태로와진다.

사람에겐 공감능력이란 것이 있다. 어느 동물이나 칼에 찔리면 고통스러워한다. 남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며 눈을 감는 것은 주로 공감능력이 발달한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다. 고등한 동물중에는 비슷한 공감행태를 보이는 동물도 있다. 반면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은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자기의 고통이다.

지난 5년간 알았던 것보다 최근 일주일새 문 대통령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느낌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태로운 5년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왕정 시대에는 왕의 인격이 통치의 핵심이었다. 대통령의 인격이 통치의 핵심이었던 5년이 아니었던가 한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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