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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국회와 패스트트랙

3년 만에 소환된 국회 ‘빠루’ 논쟁… 나경원 “박용진 명예훼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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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선거법 개정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간 폭력 사태가 벌어진 지 3년 만에 폭력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 “‘빠루’(쇠지렛대)를 들고 국회에서 온갖 법을 다 막아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나 전 의원은 ‘당시 빠루를 사용한 것은 민주당 측이었는데 박 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박 의원에 대한 고발을 예고했다.

2019년 4월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정의당, 바른미래당 손학규계, 민주평화당 등 3개 군소 정당과 손을 잡고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들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강행했다. 제1 야당이었던 한국당의 반대를 무력화하고 이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처리를 원했고, 군소 정당들은 비례대표 선거 정당 득표율을 전체 의석 수에 연동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 도입하면 자신들의 의석 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당은 “제1 야당과 합의 없이 ‘게임의 규칙’인 선거법을 고치는 것은 폭거”라고 반발했으나, 민주당과 3개 군소 정당은 머릿수를 앞세워 다수결로 법안 처리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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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6일 새벽 국회 의안과 사무실 앞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이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의 제출을 위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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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발의를 막기 위해, 한국당은 법안을 접수하는 국회사무처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했다. 민주당과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은 의안과 사무실을 되찾으려 했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빠루’는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한국당이 걸어잠근 의안과 사무실 문짝을 부수거나 뜯기 위해 쇠망치와 쇠지렛대가 동원됐던 것이다. 민주당은 의안과 접수가 실패하자 전례 없는 ‘전자 발의’를 통해 법안을 발의했다. 나 전 의원은 의안과 사무실 진입을 시도한 사람들로부터 한국당 관계자들이 빼앗은 쇠지렛대를 들고 민주당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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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6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의안과 사무실 앞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과 3개 군소 정당이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접수시키기 위해 동원한 쇠지렛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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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3개 군소 정당은 이때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법안들을 2019년 말 전부 강행 처리했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해 이를 막으려 했지만, 민주당은 ‘국회 회기가 끝나면 무제한 토론도 종결되고, 관련 법안은 다음 회기에서 곧바로 표결할 수 있다’는 국회법 조항을 이용해 회기를 잘개 쪼개는 방식으로 무제한 토론을 무력화했다. 민주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180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으나, 법안 처리에 동참한 3개 군소 정당 중에선 정의당만 6석을 얻었고 나머지 정당들은 전멸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각기 ‘비례대표 위성 정당’을 만들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군소 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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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2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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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13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 원내대표는 빠루 들고 국회에서 온갖 법을 다 막고 있었다”며 “이런 방식이 국민들에게 준 인식은 ‘저기(한국당)는 야당 노릇도 하기 어렵겠구나’였고 그래서 저희가 180석을 얻었다”고 했다. 한국당이 민심과 멀리 떨어져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 결과 총선에서 참패했는데, 민주당도 이런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한 이야기였다.

박 의원은 지난 3월 MBC와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도 “나경원 원내대표는 빠루를 들고 국회를 활보하고 다니지 않았느냐”며 “그러면 안 된다. 민주당은 그렇게 투쟁만 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민생을 책임지고 나가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했다. 페이스북에도 “싸우는 야당, 강한 야당이 되겠다던 한국당의 ‘빠루의 길’을 걸어가선 큰일 난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 의원의 ‘빠루’ 언급에 대해 반발했다. “2019년 4월 우리 당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의안과 앞과 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 때 쇠지렛대(일명 빠루)를 들고 나타난 것은 바로 방호원과 민주당측 보좌진이었다. 의안과 문을 뜯어내겠다는 시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한 나 전 의원은 “우리 당은 위 빠루를 빼앗았고, 그 다음날 아침 당직자들이 빼앗은 빠루를 나에게 보여주며 한번 들어보라 해서 들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것이 (내가 빠루를 들었던 일의) 전부였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마치 내가 빠루라도 들고 폭력을 사용한 것처럼 왜곡하기 시작했다”며 “박 의원은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내가 빠루를 들고 설쳐댔다는 허위사실을 각종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인터넷상의 허위사실을 진실인 양 호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악의적”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은 “부득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박 의원을 고발한다”며 박 의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다면 하시라도 고발은 취하할 수 있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한편 “나의 저항을 강경 투쟁으로 치부하며 그로 인해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박 의원은 물론 민주당이 계속 언급하나, 이 또한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가 원내대표로 당선된 2018년 12월 11일부터 후임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된 2019년 12월 9일까지 우리 당 지지율은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며 “야당으로서 여당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문재인 정부의 민낯을 드러냈을 때 국민들은 지지를 보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강경 투쟁으로 총선에서 대패했다고 민주당이 그 동안 주장한 이유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야당의 저항을 막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폭력 혐의로 한국당 의원 23명과 민주당 의원 5명이 기소됐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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