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한겨레> 자료사진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11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뒤 9년 만의 일이다. 김 전 차관 사건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의 결정판으로 일컬어진다. 사건 초기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으로 특정되지 않는다며 거듭 무혐의 처분을 해 수사를 지연시켰고,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던 뇌물 혐의에선 증인 신문 이전에 ‘사전 면담’을 해 증인을 회유했을 가능성 등을 지적 받아 유력한 증거를 날렸다. 고의건 실수건 결과적으로 검찰이 김 전 차관의 무죄를 만들어준 셈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겨레>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실패한 지난 9년의 과정 가운데 결정적 장면 5개를 정리해 봤다.
‘불상의 남성’…검찰의 초기 ‘부실수사’
2013년 3월, 제55대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한 김학의 전 차관은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8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수사 끝에 경찰은 특수강간 등 10여개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차관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강제수사 없이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피해 여성 이아무개씨가 김 전 차관 등을 고소해 ‘2차 수사’가 시작됐지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의 무혐의 처분이 반복됐다. 검찰은 당시 동영상 속 남성을 김 전 차관이 아닌 ‘불상의 남성’이라고 밝혀 비판을 받았다.
당시 검찰도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는 점은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소인 등의 진술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김 전 차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가운데, 동영상 속 인물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명예훼손 등 우려가 있어 ‘불상의 남성’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대검 진상조사단의 수사권고로 진행된 3차 수사에서 동영상 속 성접대를 뇌물 혐의에 포함시킨 점을 고려하면, 당시 수사팀의 소극적 판단이 김 전 차관 수사의 첫단추를 잘못 꿰게 된 계기였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대대적 재수사 돌입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12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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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정식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듬해 3월 과거사위원회 산하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보내면서 3만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를 누락했다고 밝혔고 경찰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진상조사단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이 사건 관련해 경찰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검찰 과거사위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은 2019년 6월 김 전 차관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받았다는 성접대는 ‘액수를 상정할 수 없는 뇌물’로 판단해 뇌물수수 혐의에 포함했다. 다만, 검찰은 청와대의 수사 외압 의혹은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의 초기 ‘부실수사 의혹’도 공소시효 문제로 직무유기 혐의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수억원대 뇌물 혐의, 성접대 혐의와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1월22일 오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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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동영상’ 고화질 원본, 방송 통해 공개
<와이티엔>(YTN)은 2019년 4월 ‘김학의 동영상’ 고화질 원본을 언론사 최초로 입수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기존 저화질 화면과 달리 김학의 전 차관으로 보이는 남성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 동영상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기관 분석도 함께 담겼다.
와이티엔 보도를 통해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 맞는다는 여론이 계속 커졌지만 김 전 차관은 부인했다. 같은 해 11월, 1심 재판부는 얼굴형, 이목구비 등이 매우 유사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동영상 속 남성을 김 전 차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김 전 차관은 면소(공소시효가 지나 사건 실체에 대한 판단 없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 및 무죄를 선고 받았다.
‘대역’ 동원한 한밤 출국 시도…긴급출금 여파는 지금까지
2019년 3월 공항에서 출국금지 당한 김학의 전 차관. ’jtbc’ 화면 갈무리. |
2019년 3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전 차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나흘 뒤인 22일 밤, 김 전 차관은 타이로 출국하려다 법무부의 긴급출국금지 조처로 실패했다. 의혹이 처음 불거진 뒤 6년여 만에 다시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국외 도피를 시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구나 김 전 차관은 출국을 시도할 때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남성을 앞세우고 본인은 얼굴을 가린 채 뒤따라 ‘대역을 썼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당시 ‘왕복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며 해외 도피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1년 뒤,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국금지요청서에 적시된 사건번호가 이미 무혐의로 종결된 과거 사건번호였고 서울동부지검장 직인도 없는 등 사실상 공문서 조작이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출국금지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진상조사단에 있던 이규원 검사,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장 등이 관련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긴급출국금지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9년 만의 무죄…모든 혐의 벗게 된 김학의
김 전 차관이 기소된 뒤 모두 5번의 재판이 진행됐다. 1심에서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면소 및 무죄 판결을 받은 김 전 차관은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업가 최아무개씨에게 받았다는 4300여만원을 법원이 뇌물로 인정하면서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항소심 증인 신문 전에 검찰의 최씨에 대한 ‘사전 면담’이 있었다며 진술 신빙성에 문제가 있어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했다. 최씨에 대한 검찰의 회유 및 압박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파기환송심은 이같은 법리에 따라 지난 1월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1일 검사의 재상고를 기각하며 파기환송심을 확정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꼭 이기고 싶은 사건의 경우, 증인에게 긴장감을 주는 차원에서 법정 증언 전에 사전 면담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결국 검찰의 잘못된 관행 탓에 무죄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과거 소극적 수사로 김 전 차관 사건의 첫 단추를 잘못 꿴 검찰이 뒤늦게 대대적인 재수사를 벌여 기소했지만, 압박 수사의 잘못된 관행으로 유일하게 유죄로 선고됐던 혐의마저 무죄로 마무리된 셈이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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