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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선대 독립운동 정신 본받아 인술 펼치는 민족병원으로 거듭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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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한방병원 신준식·신민식 형제

중앙일보

신준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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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


올해로 광복절이 77주년을 맞았다. 광복 이후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역사에 묻힌 채 빛을 보지 못하는 독립운동가가 여전히 많다. 이들을 발굴·재조명하는 작업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초석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생한방병원 설립자인 신준식 박사와 동생 신민식 사회공헌 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독립운동가의 역사 발굴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2018년부터 고군분투해 왔다. 그 결과 2020년 숙조부인 신홍균 선생이 독립군 한의 군의관으로서의 업적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한 데 이어, 올해 광복절 선친 신광열 선생이 항일투쟁의 공훈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에 서훈됐다. 잊힌 독립운동가를 세상에 알려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다. 신준식 박사와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을 만나 한의학 발전의 원동력이 된 민족정신에 대해 들어봤다.

Q : -신광열 선생 서훈을 축하드린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 신준식 박사(이하 신준식) 선친의 독립운동 업적이 약 90년 만에 빛을 보게 돼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물론 가문의 영광으로서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선친이 뜻해오신 바를 이번 서훈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 뜻깊다. 자생한방병원은 선대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민족병원’이다. 설립 이념인 ‘긍휼지심(矜恤之心)’은 ‘환자의 아픔을 내 가족의 아픔처럼 느껴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진료에 임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의미다. 가문의 어르신들이 독립운동을 하시며 늘 강조하던 정신이다.

Q : -독립운동 사실 입증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A :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이하 신민식) 유일한 단서는 선친이 남기신 가문의 독립운동 기록인 ‘월남유서’뿐이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추적을 피해 주로 가명을 사용했기에 행적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찾는 수밖에 없었다. 유서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도 확인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에 언급된 집안 어르신들의 독립운동 행적, 일본 헌병일지, 경무대 기록, 논문 등을 광범위하게 살폈다. 특히 선친의 기록 중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보고서와 일치하는 부분이 발견된 데다 당시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 문서에 찍힌 지장(指章), 기입된 호주(戶主) 이름이 확인돼 사실 입증에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Q : -독립운동 업적을 되새기면서 책임감이 컸을 것 같다.

A : 신준식 우리 집안은 7대째 한의사 가문이다. 독립운동 역사의 잃어버렸던 한 페이지를 찾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게 된다. 한의사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선친과 숙조부뿐 아니라 많은 선배 한의사들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지켜온 나라와 한의학은 우리 민족의 자산인 것이다. 이를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인 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그러나 아직 한의사의 독립운동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최근 한의계와 사학계를 중심으로 한의사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더 많은 한의사 독립운동가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다.

Q : -관련 연구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들었다.

A : 신민식 ‘월남유서’의 내용을 쫓아 고증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영역의 도움이 필요했다. 각종 논문을 찾으며 자문을 구하던 중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국민대 이계형 교수를 만나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는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하며 다양한 논문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대학원과 함께 오는 23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호텔에서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사를 다룬 학술대회를 연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의사들의 삶’이라는 주제로 역사학자들과 함께 다양한 논의를 나눌 예정이다. 한의사의 독립운동사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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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식 박사(오른쪽)와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이 신광 열 선생의 왕진 가방과 어린 시절 부친과 왕진을 함께 다니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서 옛 기억을 떠 올리고 있다.




Q : -독립운동과 한의학은 어떤 관계가 있나.

A : 신준식 선친께서는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일제의 ‘한의학 말살 정책’ 속에 쇠퇴해가던 한의학을 걱정하며 관련 지식이 후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청파험방요결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했다.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추나요법’이다. 어린 시절부터 선친의 왕진을 따라다니며 탈구환자를 수기요법으로 치료하는 것을 자주 접했다. 이를 임상에서 활용 가능할 것이라 깨닫고 한의대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수기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학회 설립 후 추나요법의 모든 술기(術技)를 ‘임상표준진료지침’에 정리해 전국 한의대에서 표준화된 교육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젠 추나요법에 건강보험 적용까지 이루게 됐다. 침을 꽂고 움직여 통증을 치료하는 ‘동작침법(MSAT)’도 선친의 치료법이 계기가 돼 개발됐다. 선친께서는 인대침법이라는 침술로 근육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20여 분 만에 걷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한 동작침법은 통증 분야 세계적 권위지 ‘PAIN’에 게재되며 급성 요통 감소 효과가 진통주사제보다 5배 이상 빠르다는 점이 입증됐다. 마지막으로 청파험방요결을 통해 전수된 ‘청파전’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 천연물신약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청파전은 척추관절 환자 치료를 위해 쓰이던 가문의 고유 처방이다. 청파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결과, 2003년 신경재생에 효과를 보이는 신물질인 ‘신바로메틴’을 추출해 미국 물질특허를 획득했다. 2011년에는 국내 제약사와 공동 개발한 천연물신약 ‘신바로’가 최종 시판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한의학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외세의 침입에도 민족의 하나 된 노력이 있었고 그때마다 한의학이 계승됐다.

Q : -국가보훈처와 국가유공자에 대한 사회공헌활동을 적극 전개 중이다.

A : 신민식 2019년에 독립유공자 및 가족들이 예우받는 사회 분위기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자생의료재단은 약 3억원의 재단 기금을 투입해 전국 21개 자생한방병·의원과 독립유공자 및 후손 100명의 척추·관절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지원을 2019년과 지난해에 펼쳤다. 또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손자녀 장학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100명의 고교생에게 1인당 100만원의 장학금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원하기도 했다.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주거 지원도 했다. 특히 애국지사의 자택에 방문해 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존 애국지사 한방주치의’ 사업의 경우, 지난해 광복절 행사 당시 대통령이 강조해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자생의료재단이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6·25 참전유공자까지 의료지원 대상을 넓혔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 신준식 한의학을 발전시키고 알리는 진정한 민족병원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한의학은 현대에 맞게 재정립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 왔다. 지난해 자생한방병원은 미국 평생의학교육인증원(ACCME)의 정식 보수교육 제공기관으로 인증받았다. ACCME는 미국 의사의 지식 습득과 의료기술 수준 향상 등 역량 강화를 위한 보수교육 기준을 제정하고 보수교육 기관을 인증·관리하는 비영리단체다. 즉 자생한방병원이 미국 의사를 한국의 한방의료기관이 교육할 자격을 갖췄고 또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후학 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년 ‘신준식 장학금’을 통해 전국 12개 한의과대 및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선정된 12명 학생에게 연간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의학 연구개발 지원, 국내외 유수 대학들과의 협력, 보다 많은 국민이 한의 치료를 접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 만세 시위 이끌다 수감, 독립운동가 몰래 치료도

한의사 독립운동가 신광열 선생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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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한의사 신광열 선생.


신준식·신민식 형제 한의사의 선친인 청파 신광열(신현표에서 해방 후 개명)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한의사다. 1903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나 9세 되던 해 만주로 향했고 그곳에서 일제가 자행한 침략을 보고 자랐다. 성인이 된 1925년에는 제일 정몽학교의 훈도(교원)로 재임했다. 당시 정몽학교는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근무하던 모든 교사 또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독립운동가 육성에 힘을 쏟았던 그는 1930년 간도에서 3·1절 11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학생들은 일본 조계지 철조망 앞에 서서 집회를 전개했고 이에 일본총영사관 기병대는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당시 주동자로 지목받은 신광열 선생은 현장에서 경찰이 휘두른 경찰도에 맞아 옆구리에 30㎝나 되는 큰 자상을 입었다. 이후 간도일본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돼 경성 서대문형무소로 수감됐다. 이때 수감번호가 1679번이었다.

석방 후 그는 의사 시험에 합격해 만주에 광생의원을 개업한다. 이후 8년간 의원을 운영하며 부상당한 독립운동가들을 비밀리에 치료했다. 1942년에는 숙부인 독립운동가 신홍균 선생을 따라 만주 목단강시(牡丹江市) 동승촌으로 향한 신광열 선생은 군수품과 독립운동 자금을 항일연합군부대에 조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광복을 맞자 그는 해동 신익희 선생이 주도하던 정치공작대에 가입했다. 신광열 선생은 함경도 책임위원을 맡아 북으로 파견돼 구국 활동을 펼쳤다. 분단 이후에는 국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다가 일제의 한의학 말살 정책으로 위기에 처한 한의학을 재정립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1955년 한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한방과 양방의 의사 자격을 모두 취득한 신광열 선생은 아산시 도고역 앞에 청파 한의원을 개원한 뒤 의료시설이 낙후된 마을로 17번이나 이사를 하며 지역의료 활동을 펼쳤다. 그는 1980년 작고까지 의료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민족의학 부흥의 토대를 쌓았다. 정부는 이러한 그의 공훈을 기려 지난 15일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서훈했다.

글=류장훈 기자 , 사진=김동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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