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거부 끝에 증인 출석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27화입니다.》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생겨서 가족들이 저를 너무 가지 말라고 말려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5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감정평가사 민모 씨는 지난해 12월 검찰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이후 추가 조사를 받지 않은 경위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 씨는 올해 재판 과정에서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3차례 증인 출석을 거부한 끝에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대장동 사업 초기 민간사업자 중 한 명인 민 씨는 지난해 12월 8일 처음 검찰에 출석해 2시간 30분가량 검사와 면담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한 채 발견됐고 그로부터 11일 뒤엔 김문기 공사 개발사업1처장이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민 씨는 “검찰 조사 상황에서 가족들이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재판장님이 오기를 바라시는 상황인 것 같아서 큰 용기를 내서 (법정에) 왔다”고 했습니다.
민 씨는 2009년 이강길 씨세븐 대표 등이 대장동 민영개발을 추진하던 당시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과 함께 이 대표의 ‘자문단’으로 일한 인물입니다. 당시 한나라당 신영수 전 국회의원의 동생과 친분이 있었던 민 씨는 신 전 의원 측에 LH가 대장동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는 신 의원의 동생에게 “사업이 잘돼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이라며 500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민 씨는 2011~2012년경 같은 초기 민간사업자인 정재창 씨 등과 갈등을 빚은 끝에 대장동 사업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2015년 수원지검이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당시 민 씨는 신 의원의 동생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적발돼 이 대표 등과 함께 제3자 뇌물교부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됐습니다.
이날 법정에서 민 씨는 대장동 사업에서 빠지게 된 경위에 대해 “(정 씨 등의) 강압에 의해 그만두게 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면서 민 씨는 “(특혜 및 로비 의혹이 불거진) 지금은 그분들이 공갈 협박해주셔서 고맙다. 시원하게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재판은 민 씨의 요청으로 한때 동업자였던 피고인들과 증인 사이를 분리하는 가림막을 설치한 채 진행됐습니다.
● 감정평가사 민 씨 “2010년에 대장동 4000억~8000억 원 수익 날 거라 예상”
검찰에 따르면 민 씨는 지난해 12월 검찰에 출석해 “2010년 당시 대장동 개발사업 수익 규모를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와 함께 4000억~8000억 원 상당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 ‘대장동 5인방’의 핵심 혐의는 대장동 부지의 택지 예상 분양가를 일부러 낮춰 잡아 사업 예상 수익을 축소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돌아갈 몫을 줄였다는 것(특경법상 배임)입니다. 자연스레 이날 민 씨의 이 진술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공방이 집중됐습니다.
검찰 주신문에서 민 씨는 “수익은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분양 사업을 할 경우 4000억 원에서 8000억 원의 수익이 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며 당시 진술을 반복했습니다. 민 씨는 “(인근) 'IT 기업들의 수요가 있어서 미분양을 예상 못 했다'는 진술도 했었다”는 검찰의 질문에도 “(미분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할 수 있는 시장 상황이 아니었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대장동 사업 부지를 위례신도시사업 부지보다 낫고 판교의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대장동 사업 리스크가 컸다는 피고인 측 입장과는 배치됩니다. 결국 이들은 대장동 사업으로 배당수익 4040억 원과 분양수익 최소 3000억 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 씨는 2011~2012년경 사업에서 빠지게 된 뒤 2014년경부터 수원지검의 대장동 사업 로비 의혹 수사를 받게 되면서 같은 수사 대상이었던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과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민 씨는 “검찰 조사가 이미 많이 이뤄진 상황에서 공공사업에 참여하는 게 제 입장에서 불가능한 일인데 (대장동 사업에) 참여했다고 들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검찰이 “공모에 의해서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 의아했단 것이냐”고 묻자 민 씨는 “다른 사업자가 된 줄 알았는데 이쪽(같은 사업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남 변호사 등)에서 기획해서 들어갔다고 해서 놀랐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반대신문에 나선 피고인 측은 민 씨가 있던 2010년 당시 환지 방식을 기반으로 한 사업 구상과 수용 방식을 기반으로 제1공단과 결합해 이뤄진 실제 사업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김만배 씨 측 변호인은 민 씨에게 “4000억~8000억 원 상당 이익을 예상했다는 것은 환지 방식에 의한 것이냐”고 물었고 민 씨는 “저는 수용방식은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민 씨는 “1공단 개발에 들어갈 비용 같은 것도 전혀 고려가 안 된 것이지 않으냐”는 김 씨 측 질문에도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재주신문에서 민 씨에게 “환지 방식에 의한 경우 토지 (매입)비가 1조2000억 원이고 수용방식의 (토지) 보상비는 7000억 원”이라며 “증인의 설명은 수용 방식은 환지 방식보다 5000억 정도가 낮은 (토지) 매입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취지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민 씨가 환지가 아닌 수용 방식을 계획했다면 4000억~8000억 원보다도 오히려 이익을 더 높게 추산했을 거라는 취지입니다. 민 씨는 “땅이 똑같다면 그 논리가 맞다”고 했습니다.
● 서증조사 진행... 故 유한기·김문기 진술조서도 법정 현출
5일 열린 52차 공판에서는 검찰 측 제출 증거에 대한 서증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예정됐던 증인신문을 대부분 마치면서 재판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겁니다. 이날 법정에는 그간 출석해왔던 증인 30여 명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조서와 관련 서류 등이 현출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사망한 유한기 전 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전 공사 개발사업1처장의 진술조서도 증거로 채택되면서 법정에서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공개된 증거에 따르면 김 전 처장은 2015년 2월 대장동 사업 담당 부서가 갑작스레 공사 개발사업2팀에서 본인이 소속된 1팀으로 바뀐 것과 관련해서 “사전에 아무런 지시 없이 대장동 사업을 이관받았고 회사 분위기가 고압적이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이듬해 1월 정민용 변호사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성남시장)의 제1공단 분리 방안 결재를 받아온 것에 대해 "정상적인 절차와 다르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황무성 전 공사 사장에 대한 본인의 ‘사퇴 강요’ 의혹에 대해 “유 전 직무대리에게 사직서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 사직을 권고한 것이고 이 대표나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에게 사직서를 받으라는 취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본인의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의 진술도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과 김 전 처장의 진술 모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다음 재판은 16일 열립니다. 이날 재판에서도 서증조사가 이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재판부는 서증조사를 모두 마친 뒤 이번 달 말부터 피고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다는 계획입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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