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2월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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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역을 하고 싶다며 소송을 냈지만 1심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복무제가 도입됐음에도 여전히 ‘양심의 내용’을 평가해 대체역 편입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지난 23일 나단씨가 낸 대체역 편입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에서 나씨 청구를 기각했다.
나씨는 ‘사회주의에 기반한 평화주의 신념’을 이유로 병무청 산하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대체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2020년 6월 심사위가 생긴 뒤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중 유일하게 기각 결정된 사례(지난 7월말 기준)이다.
사회주의자인 나씨는 국가 공권력을 가난한 이와 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배제의 수단으로 보는 신념을 가졌다. 군대는 국가의 폭력기구이며, 자신은 자본가와 자본을 지키는 일에 동원되거나 국가가 행하는 폭력의 일부분이 되지 않겠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각종 사회 문제와 집회·시위를 경험하고, 사회주의를 공부하면서 신념이 형성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나씨의 양심이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서 깊거나 확고하고 진실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씨의 양심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인격이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 아니라 ‘사상과 가치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헌법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선언하고 있다면서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사상 실현의 자유까지 국방의 의무에 앞서 보호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나씨가 모든 전쟁이나 물리력 행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군대나 정당하지 않은 주체·목적·방법의 전쟁에만 반대한다고 했다. 신념의 개념·기준이 모호하고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역을 두지 않은 병역법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특정한 내적인 확신 또는 신념이 양심으로 형성된 이상 그 내용 여하를 떠나 양심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양심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은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헌재 결정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전쟁없는세상은 “나씨가 스스로 주장하는 사회주의 신념을 진실되게 갖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뿐, 양심과 신념의 내용을 갖고 보호 여부를 판단하면 안 된다”며 “폭력에 대한 나씨 견해와 주장이 토론의 대상이 되거나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그게 양심이 가변적이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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