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월드비전 공동기획
‘식량위기’를 증언하다 (하) 케냐
11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 식량 배분센터에서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바코드 인식 카드를 들고 줄을 서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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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간) 오전 7시 케냐 남동부 가리사현 북부의 다답 난민단지 내 이포캠프. 돌(30)은 빈 포대와 식용유 담을 통, 외발 수레 하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서다.
10분 정도를 걸어 월드비전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공동 운영하는 식량배급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렇게 줄이 길지 않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3시간까지도 걸린다. 돌은 가족 구성원 수, 나이 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바코드 등이 찍힌 식량배급카드를 제시한 뒤 입장했다. 입구에서 2명이 쫓겨났는데 남의 카드를 가지고 오거나 배급일이 아닌데 찾아왔기 때문이다. 입장한 이후에도 월드비전의 바코드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중복수령 여부를 확인받는다.
게시판에는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쌀과 콩, 식용유의 양이 적혀 있었다. 1인당 쌀은 6.51㎏, 콩은 1.86㎏, 식용유는 1.085ℓ, 영양실조 방지 보조식은 2개가 할당됐다. 성인이 한 달을 버티기엔 부족한 양이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성인 일일 최소 필요열량(2100㎉)의 80% 정도 수준으로 이마저도 3분기 들어 미국 정부의 특별지원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분기에는 성인 일일 필요열량의 60%, 2분기에는 50%만 지급됐다.
11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 식량 배분센터에서 난민들이 배급 받은 쌀·콩·식용유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확인한 뒤 부족한 부분을 직원에게 건의, 추가 배급을 받고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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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답 난민단지 거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줄어든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컸다.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대거 발생하고 인도적 지원 수요가 늘면서 개별 지원사업에 투입되는 자본은 줄었다. 난민 대상 식량 배급을 지원하는 WFP도 다답 지역 지원사업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에 따른 물류 차질, 식량가격 상승으로 계획한 만큼 식량을 수급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줬다. 여기에 최근 기후변화가 심해진 탓에 새로 난민들이 대거 다답에 모여들면서 1인당 식량 배급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다답 난민단지는 고질적인 지역분쟁과 기후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식량위기 해결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돌은 네 식구가 먹을 쌀(26.4㎏)과 콩(7.44㎏), 식용유(4.34ℓ)를 수레에 싣고 날라줄 사람을 찾았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수레를 끌고 50실링(약 600원)을 받아갔다. 돌은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비싸서 수레와 짐꾼을 쓴다고 말했다.
돌은 그렇게 받아온 식량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요리를 했다. 불을 지핀 아궁이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와 양파, 토마토를 집어넣었다. 국자로 토마토를 으깨면서 중간중간 물과 각설탕을 넣고 끓였다. 물컵에 적신 안남미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소말리어로 비스텔라라고 부르는 요리가 완성된다. 채소죽과 비슷한 맛이 났는데 들어간 재료가 부족해서인지 너무 묽어 한 끼 식사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11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에서 난민 돌(30)이 식량 배분센터에서 배급 받은 식량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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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에서 넘어왔다는 14세 소녀 냐보대 추알댕도 내전을 피해 다답에 왔다. 냐보대는 파가크라는 마을에서 살았고 오크라, 옥수수가 많이 났으며 어른들이 도정하는 모습이 기억난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013년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다른 지역에서 경찰로 일하는 아빠를 보러 간 사이 집주변에서 총성이 들렸고, 같이 있던 사촌들과 함께 무작정 집을 떠났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교회 지도자를 만났고, 다답 난민단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고 케냐로 함께 들어왔다. 그렇게 피란 4년 만인 2017년 다답 난민단지에 들어왔고 지금은 이포캠프에서 남수단 난민 양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분쟁을 피해 난민단지에 들어와 장기 거주하는 사람도 많다. 소말리아에서 유목민으로 살던 사하라 하산(47)은 25년 전인 1997년 다답 난민단지에 정착해 손녀까지 식구 10명이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소말리아에는 평화가 없었지만 이곳에는 평화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며 생계유지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사하라 하산(47)씨가 10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 내 자신의 집 모기장 안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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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은 난민단지 밖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각종 기구가 지원하는 식량과 현금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막내아들 압질카디르(6)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중증급성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 사하라도 당시에 하루 한 끼 정도 먹던 때라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오랜 기간 당뇨를 앓던 남편까지 떠나고, 이혼한 딸 식구까지 거둬들이게 되면서 끼니 걱정은 더 커졌다. 이혼한 딸은 난민단지 내 시장에서 노상 카페를 하면서 하루 1달러 남짓한 돈을 번다. 가족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하라는 두 살배기 손녀 나자흐도 지난해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전했다.
지난 7일 다답 난민단지에 들어온 아흐메드 이스마일(73) 가족은 소말리아 북서부 케냐 접경지대 돌로 마을 일대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극심한 가뭄에 기르던 소 30마리와 염소 200마리를 모두 잃게 되면서 이주를 결심했다. 평생 유목민으로 살았고 2011년 대가뭄도 이겨낸 아흐메드에게도 이번 가뭄은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예전에는 한 해 가뭄이 들면 다음해에는 조금이라도 비가 왔다”면서 “최근 4년간은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아 가축들이 다 죽었다”고 말했다. 돌로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상황이 낫다고 들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많은 가축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흐메드 이스마일(73)씨와 가족들이 10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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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메드는 다답에 가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을 잃은 며느리 술다나 하산(32) 가족까지 여덟 식구를 이끌고 난민단지로 왔다. 눈이 보이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데다 며느리도 임신한 상태라 이동이 쉽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으로 돌로에서 수프 지역을 지나 케냐의 만데라 지역을 거쳐 다답까지 도착하는 데 5일이 걸렸다. 아흐메드는 자신의 신체장애와 어린아이들이 많은 상황 등을 운전자들에게 설명했고, 세 운전자 모두 흔쾌히 도와줬다. 난민 등록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머물 거처도 난민단지 내 다른 주민들이 내준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
아흐메드의 큰손녀 압시라 압둘라히(12)는 가족들하고만 붙어 지내며 사는 유목민 생활을 탈출한 것에 기뻐했다. 며느리 술다나는 압시라를 학교에 보내겠냐고 묻자 “나중에 자기 앞가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찬성했다. 다만 둘째아들 사할 아흐메드(28)는 “예전에는 가축이 있어서 우리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가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케냐의 다답 난민단지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유입된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2011년 소말리아 대가뭄을 피해 넘어온 난민 13만명을 수용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 난민 수용시설이 됐다. 현재 등록된 난민만 23만3000명이며 올해 신규 난민신청자 4만5000명에 대한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면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현지시간) 케냐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 인근 도로에 가뭄으로 죽은 소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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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운영된 난민시설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려 국제사회 지원은 줄어들었다. 다답 난민단지가 위치한 지역은 반건조 기후로 연평균 강수량이 275㎜에 불과해 작물을 경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소말리아 접경지대는 대부분 유목생활을 하는데 오랜 가뭄으로 가축까지 떼죽음을 당하면서 식량위기 상황은 심각해졌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현재 난민단지 상황은 26만명이 사망한 2011년 소말리아 대기근 때와 비슷해지고 있다. 현재 소말리아 국민의 50% 이상이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WFP는 유엔난민기구(UNHCR), 케냐 정부와 협의해 18일부터 신규 유입 인구 조사 및 난민 등록 절차를 재개했다. 앞서 2011년 소말리아 대기근 때 열었던 난민단지 내 ‘이포2’ 캠프도 다시 열기로 했다. WFP의 공식협력기관으로 다답 난민캠프에서 식량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월드비전은 올해 식량 1만3651t을 포함, 1073만달러(약 152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새라 보르셔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다답지역 사무소장이 11일(현지시간) 지역 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냐|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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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수용지역 주민들의 생계유지도 곤란해지면서 주민들 간 분쟁이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새라 보르셔스 WFP 다답지역 사무소장은 11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케냐인들 중에서도 삶이 어려워진 분들이 스스로 시민권을 포기하고 난민 지위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만큼 식량위기가 심각하다는 징후로 난민 지원과 현지 주민 지원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다답이 속한 가리사현은 물론 주변 거주 주민들은 케냐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난민들과 같은 소말리족이다. 생김새나 쓰는 말이 비슷하기 때문에 난민단지에 잠입한 이들과 실제 난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보르셔스 사무소장은 “최근에 이 지역으로 들어온 분들이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난민캠프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사는데 땅 주인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주변 와지아·마르사비트현에서는 이미 유목민들 사이에서 녹초지, 식수원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지역 정부에서는 난민 발생의 원인인 분쟁, 기후변화가 장기화됨에 따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회통합, 유목민들의 생활방식 변화 등이 그것이다. 크리스토퍼 시엘레 가리사현 부현장은 “유목민들이 우물 근처나 저수지 근처에서 소규모로 경작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타워가든이라고 해서 포대 안에 흙을 채운 것을 여러 층으로 만들어 물을 절약하는 재배 방법, 양봉 기술도 전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조직원을 색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가리사현 정부는 소말리아 정부의 강경 대응에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샤브가 와해되고, 조직원들이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올 가능성에 대비해 중앙정부와 계속해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응굴리 조엘 가리사현 다답 난민단지 총책임자는 “각종 비정부기구(NGO), 유엔 기구들과 함께 난민 등록 완료 전 난민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식량과 현금을 지원해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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