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한국 경제 위기 요인과 해법을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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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는 경험이 자산이다. 거시경제라는 큰 그림에만 몰입하다 보면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놓기 쉽지만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다르다. 국내 최대 국책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실물경제와 함께 호흡한 덕에 그야말로 관록을 갖췄다.
무엇보다 경제위기를 현장에서 목도하고 대책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그가 1995년 미국 텍사스A&M대에서 교편을 잡다 KDI에 합류한 지 불과 2년 뒤 외환위기가 터졌다. 일국의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던 강렬한 경험은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통화정책과 실물경제 접점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KDI에서 거시·금융경제연구부를 총괄했던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와 마주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던 2020년에 코로나19 위기가 등장하자 통화정책에 적극 관여하며 위기 진화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KDI 원장에 취임하며 잡게 된 국책연구원 지휘봉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복합위기 파고가 몰아친 가운데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등 은행 위기가 확산될 우려까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요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을 듣기 위해 최근 매경미디어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조 원장은 "지금 생산성 개선에 힘쓰지 않으면 2050년께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며 "저출생과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한 가장 시급한 정책은 근로시간 개편"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저성장 추세가 굳어지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을 어떻게 올릴 수 있나.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을 하나만 꼽으라면 인구 감소다. 인구 문제가 워낙 커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되돌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빠르게 내려가는 속도를 조절할 수는 있다. 사람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개혁과 개개인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핵심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부진한데.
▷원래 정부가 제안했던 노동시간 유연화의 기본 골격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시간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통 우리가 주 52시간씩 1년에 약 50주를 일한다고 하면 1년간 근로시간은 2600시간이다. 이 안에서 노사 자율로 근로시간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1년에 240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전체 근로자의 5~10%가량 된다.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예외적인 업종은 정부에 상황을 신고하고 모니터링을 받도록 하는 식으로 국민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데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필요한 개혁이 계속 지체되면 2050년을 전후해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 개혁 속도에 따라 그 시기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저출생 문제의 해법은 뭔가.
▷현금성 지원 효과는 굉장히 미미하다. 가장 중요한 줄기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이게 기능하려면 우선 육아에 대한 공공 서비스의 양과 질이 확보돼야 한다. 노동개혁을 통해 유연한 근로시간제가 정착돼야 하며 여성에게 덜 차별적인 사회 규범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의지가 얼마나 된다고 보나.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과거만큼 크지 않다. 경제하려는 의지를 진작시키려면 동기부여가 잘돼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보자. 돈을 버는 과정에 불법이 있으면 이를 제어해야지,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돼서는 안 된다. 이게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선진국 가운데 경제하려는 의지가 가장 충만한 나라가 미국이다. 새롭게 부를 창출하는 세계적인 혁신 기업이 미국에서 많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더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나서서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만들어내는 시대는 지났다. 다만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먼저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야 한다. 한국은 대기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강한 나라다. 취직은 대기업에 하고 싶어하면서 대기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기업이 커가고 대기업이 많아지는 게 필요하다. 이것을 못하게 하는 걸림돌을 찾아 제거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대부분 벤처 기업가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키운 후 매각하고 싶어한다. 통상 미국 벤처들은 대기업에 사업 부문을 팔고 나간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좋은 벤처를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삼성이 시장을 다 먹으려 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비슷한 기술이 있으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기업을 인수한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벤처가 크는 길을 막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과잉 보호도 문제다. 중소기업 지원 혜택이 크다 보니 기업을 키우지 않고 중소기업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한다. 이런 걸림돌을 치워 대기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
―중국이 정점에 달했다는 '피크차이나' 주장이 나온다. 탈중국 수요를 한국으로 끌어올 방법은.
▷왜 기업들이 탈중국하는지에 답이 있다. 시진핑 3기 체제가 되면서 정부가 기업 활동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규제 시스템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게 중국의 문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규범에 의해 투명한 법 집행이 이뤄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부의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관여가 없어야 하며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유연해져야 한다.
조동철 원장
△1961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텍사스A&M대 경제학과 조교수 △KDI 연구위원·선임연구위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겸 거시경제팀장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KDI 17대 원장(2022년 12월~ )
[김정환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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