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죽을 때까지 버틴 김우중·전두환…그렇게 못 걷은 '검은 돈' 31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MT리포트] 미납추징금 31조, 숨기긴 쉽고 뺏긴 어렵다(上)

[편집자주] 범죄수익 몰수·추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감옥 갔다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제2, 제3의 범죄로 이어진다. 범인이 은닉한 수익까지 회수하는 것이 형벌의 완성이자 범죄 예방의 첫걸음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1조원 중 환수한 돈 '1009억원'…추징금 "안 걷나, 못 걷나"


-"세금은 잘 걷으면서 범죄수익은 못 회수하나"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1조2788억원. 올해 1월 기준 유죄판결이 확정돼 몰수·추징 결정이 났지만 거두지 못한 범죄수익이다. 정치권과 기업, 금융,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매년 거액의 부정자금, 횡령 사건이 잇따르지만 법원 판결 이후 추징되는 자금은 미미하다. 지난해 검찰이 환수한 돈은 1009억원으로 전체 누적 미집행 추징금의 0.32%에 그친다.

올해 1~2월 누계 국세수입에서 '세수 펑크'가 발생한 16조원의 2배에 달하는 돈이 나라 곳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유류세를 올리려는 정부 검토안과 맞물려 최근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900억원대 미집행 추징금이 조명을 받으면서 인터넷엔 '세금은 잘 걷으면서 범죄수익은 안 걷나, 못 걷나'라는 풍자글까지 등장했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범죄수익 미집행 추징금은 2015년 25조8454억원에서 지난해 31조3837억원까지 늘었다가 올 1월 31조2788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돈이 환수되지만 금융범죄로 늘어나는 범죄수익을 추징 실적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건수로 보면 올해 1월 471건이 추징집행됐는데 이는 집행해야 할 3만3129건(누적)의 1.42%에 불과하다.

미집행 추징금의 90%가 100억원대 이상의 고액사건이다. 2006년 대법원 판결 등으로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임원들에게 확정된 추징금 23조358억원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거둬들인 자금은 지금까지 893억원에 불과하다. 전두환씨의 경우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지만 미집행 추징금(922억원)이 전체금액의 40%가 넘는다.

범죄수익 추징 실적이 저조한 것은 현행법상 제약 탓이 크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추징집행 당사자가 사망하면 추징 절차가 중지된다.

18조원 가까운 추징금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회장이 2019년 사망하면서 관련 재산 환수가 사실상 멈춰섰다. 최근 논란인 전두환씨의 사례 역시 국회에서 2013년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까지 만들어 전씨의 재산을 취득한 제3자에 대해서도 추징할 수 있도록 길을 텄지만 2021년 전씨의 사망으로 제동이 걸렸다.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범죄수익 은닉수법이 빠르게 고도화하는 것도 저조한 집행률의 이유로 꼽힌다. 벌금은 납부하지 않으면 노역장 유치 등으로 강제하지만 추징금은 안 내고 버티더라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 수사당국이 재산추적에 열을 올리지만 명의신탁, 차명계좌는 물론이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가상자산으로 자금을 세탁할 경우 환수가 쉽지 않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추징대상자들은 대부분 재산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분산시키거나 가상자산 같은 다른 자산으로 바꿔 해외로 옮기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추적하는 데 오래 걸리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자금추적에 성공하더라도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추징대상자의 자금인지 파악하는 게 또 다른 문제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 내 전담인력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해 부산·수원 등 전국 8개청에서 범죄수익환수 전담조직을 운영하지만 인력은 도합 500명도 되지 않는다. 1인당 맡는 사건이 60~70건인 데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7개청에서는 비공식 직제로 전담팀을 운영해 대부분 공판이나 다른 형사사건과 함께 다루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적어도 검사 1명은 추징업무를 전담하라는 지침이 있긴 하지만 일선청 사정이 열악해 쉽지 않다"며 "인력 보충과 조직 정비 등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도형은 약과"…범죄추징금 안 내고 버티기 34년째 기록도

-차명·해외은닉 수법 별천지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테라·루나 4145억원, 오스템임플란트 2215억원, 라임자산운용 1303억원, 우리은행 614억원…

사법·금융당국의 처벌 강화 노력에도 금융 관련 범죄가 다양한 수법으로 진화, 확대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감옥을 갔다와도 남는 장사'라는 빗나간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올 1월 기준으로 31조원을 넘어선 미납 범죄수익을 온전히 몰수·추징하는 게 금융범죄 근절 해법의 첫 손에 꼽히는 이유다.

미납하면 강제노역에 처하는 벌금형과 달리 추징금은 안 내도 이렇다 할 제재수단이 없다. 추징금 922억원을 미납한 상태에서 2021년 11월 숨진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대표적이다. 전씨는 1997년 대법원 판결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지만 25년여가 흐른 현재까지 절반가량을 미납했다. 국회에서 그의 이름을 딴 '전두환 추징법'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전액 환수는 요원한 상황이다.

전씨를 넘어 34년째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범죄자도 있다. 최장기 추징금 미납자인 A씨는 1990년 관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현재까지 추징금 12여억원을 내지 않았다.

검찰이 실질적으로 환수하는 범죄수익은 매년 1000억원 수준이다. 액수로 치면 적잖은 규모지만 올 1월 기준 누적 미집행 추징금 31조원과 견주면 연간 집행률이 0.5%에 그친다. 전체 추징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공동 추징금(23조358억원)을 제외하더라도 실제 환수율은 3% 정도다.

환수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것은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명의신탁과 대포통장, 차명계좌가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해외로 돈을 빼돌리거나 가상화폐 등으로 세탁하는 경우도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공조 수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진다. 서울남부지검은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로 전세계에서 50조원이 넘는 피해를 내고 4000억원대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되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경영진이 재산의 상당 부분을 비트코인 등으로 바꿔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 이체한 것으로 보고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 등에 권 대표 소유의 가상화폐 인출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권 대표의 스위스 예금계좌를 동결하기 위한 사법공조 절차도 진행 중이다.

범죄 피의자가 제3자에게 넘기거나 제3자 명의로 감춘 재산은 환수 절차가 한층 더 복잡하다. 전두환씨가 생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재산을 감춰뒀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짙지만 사실상 환수는 불가능하다.

22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스템임플란트 전 자금관리팀장 이모씨 사건에서는 가족들이 재산 몰수에 대비해 재산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씨는 아내와 처제 명의로 75억원 상당의 부동산 등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고 서초동 한 변호사는 "부동산 구매자금이 범죄수익이라는 것을 입증하더라도 민사상 소유권 말소·채권 청구권 등을 함께 따져야 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몰수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최근 테라·루나 사태 등 경제범죄가 첨단화하고 박사방 등 성범죄와 가상화폐가 결합한 신종범죄가 진화하는 데 맞춰 수사기관의 환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박사방 사건에서도 가담자 대부분이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지급한 만큼 주범인 주범인 조주빈 일당이 숨겨둔 범죄수익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규모 보이스피싱이나 금융사기, 성을 미끼로 한 신종범죄 등의 목적은 무조건 돈"이라며 "피해자 보호와 범죄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죄에 상응하는 형벌뿐만 아니라 범죄로 얻은 수익을 모두 환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범죄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서 수사 과정에서 불법범죄 수익으로 추정되는 돈을 발견하더라도 피의자가 출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결국 반환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며 "돈세탁으로 의심되는 거래가 있으면 불법적인 수익으로 추정하고 피의자 쪽에서 범죄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는 프랑스처럼 추정 규정이 있다면 눈 뜨고 범죄수익을 반환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심재현 기자 urme@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